개발오적

누가 토건국가의 거품제조 짱이었나?

토건종식3 2010. 4. 20. 22:51

[주거의 사회학](2부) 우리 안의 욕망…③ ‘서민 정치’의 맨얼굴

공약은 ‘서민 주거 안정’ … 정책은 ‘토건세력 키우기’   경향신문 | 특별취재팀 | 입력 2010.04.20 18:08 

과 관련한 정부의 역할은 국민의 주거가 안정되도록 하는 것이다. 양질의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임대 거주가 제도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 국민의 기본권인 주거 권리를 국가가 담보하는 것이다. 정작 우리의 주택 정책은 토건 세력들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정부는 경기부양수단으로 주택정책을 악용해 집값 거품을 키우기 일쑤였고,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민심몰이용으로 검증되지 않은 개발정책을 남발해왔다. 원칙보다 이해관계에 얽힌 부동산 정책은 일관성 없이 흔들리고 결과적으로 '부동산 불패신화'의 밑바탕이 됐다. 빈부격차와 주거불안으로 인한 피해와 고통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지워졌다. 역대 정권이 너나 없이 내세운 '서민 정치'의 맨 얼굴이다.

 

지난 2월11일, 대한건설협회·한국주택협회·대한주택건설협회 3개 단체가 합동으로 '긴급호소문'을 발표했다. "주택 미분양의 장기적체와 공급물량 감소, 주택대출규제 강화로 침체의 골이 깊어져 민간의 주택건설투자가 악화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불과 열흘을 넘긴 22일, 국회 건교위 소위는 경제자유구역, 관광특구지역의 아파트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토건세력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9월 서브프라임 부실이 불러온 미국발 경제위기 때에도 미분양아파트를 공공기관이 매입하도록 하는 등 주택건설 규제를 대폭 완화함으로써 국민의 세금으로 건설경기를 떠받친 바 있다.

 

1991년 수서택지비리사건이 터지자 시민들이 서울시청 앞에 몰려가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집이 안 팔리면 세금이 아니라 '가격'을 내리는 것이 정상 아닐까. 하지만 건설사들은 늘 가격은 유지하면서 세금 감면 등 규제완화를 요구했고, 정부는 이를 수용하는 일을 되풀이해왔다. 정권과 토건세력의 짬짜미를 의심하게 하는, 낯설지 않은 광경들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되면 값 안내리고 규제 완화… 정권 - 건설사 '먹이사슬'

경실련이 2009년 기준으로 지난 20년간 한국의 뇌물부패사건을 분석해본 결과 토건업자와 공무원, 정치인이 뇌물로 얽히고 설킨 사건이 전체 건수의 55%를 차지했다. 뇌물 금액으로도 48%에 달했다. 건설사와 관료·정치인이 부패의 고리로 엮이고, 그 수혜는 결국 건설사에 돌아가는 구조의 한 단면으로 해석될 만하다.

고위공직자가 퇴임후 각종 친기업 성향 이익단체의 임원으로 '영전'하는 일도 허다하다. 정보공개 자료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4년까지 퇴직한 3급 이상 건교부 고위공직자 177명 중 134명이 건교부 관련 단체와 산하기관 74곳에 자리를 얻었다.('한겨레21'·2006년 1월) 김헌동 경실련 단장은 "전직 관료가 기업이익집단의 상근 부회장으로 지내면서 기업이익에 부합하는 법안이나 정책보고서를 작성해 후배 관료들에게 건네는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며 "2005년 활발하게 논의됐던 8·31 부동산 대책의 경우에도 당·정·청이 논의한 것과 별개로 건설이익단체의 의견이 상당히 반영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토건세력과 관료의 '상호부조'의 흔적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2007년 고위공직자 재산변동 내역을 보면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 등 국가권력 3부의 고위공직자 중 절반 이상이 '버블세븐' 지역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고위공직자 재산 내역을 분석한 조선일보가 최근 우리나라 고위공직자와 산하단체 기관장 5명 중 1명은 서울 강남과 과천시에 재건축 아파트를 1채 이상 갖고 있고, 평균 2.4채의 주택·상가·오피스텔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토건세력과 정계의 '공생관계' 역시 이만 못지않다. 일부 정치인과 선출직 공무원들은 선거 때마다 개발공약을 내걸어 유권자들에게 땅값, 집값이 올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부추긴다. 동시에 건설업자들에게는 인허가 과정에서 뇌물을 받아 챙기는 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자금줄을 토건세력으로부터 확보한다. 한 중견 정치인은 "돈없이 정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치를 하는 힘은 돈에서 나온다. 이 때문에 후원한다는 이익단체와 기업이 제공하는 자금의 유혹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고 실토했다.

과거에 불거진 굵직굵직한 '토건비리' 사건들은 이를 실증적으로 증언한다. 노태우 정권 당시 정치인에게 150억원이 건네진 수서택지비리사건, 2002년 경기도·성남시청이 연루된 '파크뷰' 아파트 비리사건 등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힘들다. 2004년에는 집권당 원내대표가 한 그룹 전 임원으로부터 1억원의 불법자금을 받아 국회윤리위 사상 처음으로 윤리위반 결정을 받았다. 2005년 초반에는 교육부총리를 비롯해 경제부총리, 인권위원장, 건교부 장·차관, 헌법재판관 등이 줄줄이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낙마하기도 했다.

건설재벌, 부동산관벌, 정치인, 보수언론, 일부학자로 구성된 '부동산 5적'이 투기동맹을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정치와 토건산업이 유착되면 주거정책은 보통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되기 어려워진다.

정치인 재산증식 악용… 정권 교체 때마다 땅 비리… 부적절 공생관계 방증

역대 정부의 주택정책은 토건세력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지난 10년간 진보성향의 정권에서조차 그랬다. 김대중 정부는 당시 DJP연합에 따라 경제부처 요직을 친기업 성향의 보수인사로 채움으로써 친토건 정책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외환위기 극복의 명분으로 부동산 관련 규제 200개를 완화했을 정도다. "토지공개념을 강화하겠다"는 일성과 함께 출범한 참여정부 역시 이헌재, 김진표 등 친기업 인사들이 경제부총리를 지내면서 부동산 정책기조를 토건족의 입맛에 맞췄다. 이들의 행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아파트 '공급부족론'은 모든 정권을 관통하는 화두였다. 2004년 열린우리당은 집값을 잡으려면 주택을 더 공급해야 한다며 판교·파주·김포 신도시 건설 등을 주장했다. 참여정부는 집권기간 총 45만호의 주택을 추가로 공급했으나 집값은 내리지 않았다. 개발 광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등 지방개발정책이 줄을 이었고 동해안개발특별법 등 15개의 개발특별법이 무더기로 등장했다. 현 집권세력인 한나라당은 시장원리만을 앞세운 주택공급 확대 논리를 강화해 "중대형 아파트에 대한 잠재수요, 강남지역에 대한 대체수요 만족 방안을 마련해야 집값이 안정된다"는 논리를 폈다.

반면 주택건설과 신도시개발로 시중에 풀리는 유동자금이 또다른 투기를 부를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닥 고려하지 않았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소비자가 그 가격의 집을 살 수 있는지, 궁극적으로 누가 새로 공급되는 집을 사는지에 대한 면밀한 통찰이 없다"며 "주택보급률 100%라는 허깨비 같은 목표가 달성되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을 뿐 투기꾼이 몇 채씩 집을 사들이고 건설업체들만 배불린다는 사실은 간과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기간 아파트 가격이 전국 34%, 서울 55%나 폭등한 사실(국민은행 주택통계)이 상징적이다.

아파트 평당 건축비도 크게 올랐다. 참여정부 때인 2004년 건설교통부는 표준건축비를 25.3% 인상한 평당 288만원으로 상향조정했고, 2007년에는 구성 내역조차 밝히지 않은 '기본형건축비'라는 새로운 기준을 내세워 평당 430만원선으로 다시 끌어올렸다. 표준건축비는 올해 들어 479만원으로 또 올랐다.

얼마인지 공개되지 않는 대지비까지 포함하면 정부가 말하는 '분양가상한제'는 무력화된 것이나 다름없다. 전문가들이 아파트 건축에 평당 재료비가 100만원이면 충분하고 인건비를 합쳐도 350만원선이면 적정하다고 보는 것과 큰 차이가 난다. 건축비 기준을 인상할 당시 건교부는 "표준건축비 현실화로 공공임대주택과 소형 공공분양주택이 늘어나 서민 주거복지가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론 분양가만 올려 건설업체들의 이익을 부풀렸다.

중산층 욕망 공략한 '종부세 대선·뉴타운 총선'

둘째, 분양원가 공개의 문제다. 2004년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은 아파트 가격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분양원가 공개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허언이 되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분양원가는 개혁이 아니다"라며 "(공기업인) 주택공사도 사업자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한 원가공개는 장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소신'을 밝혔다. 건설업계는 "원가를 공개한다면 주택공급량이 줄어들어서 집값이 더 뛸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고, 건교부를 비롯한 관료들은 "공개원가의 적정성을 검증하기 어렵다"고 거들었다. 시장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의 주택시장의 거품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는 시민사회의 주장이 자리할 공간은 없었다. 집 한 채를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불투명한 구조일수록, 가격은 부풀 수밖에 없고 소비자만 바가지를 쓴다는 시민사회의 호소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셋째, 대안으로 모색돼온 후분양제 논의 역시 겉돌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모델하우스'만 보고 입주 전에 돈을 내고 아파트를 구입하는 '선분양제'를 택하고 있다. 선분양제는 원래 '분양가 상한제' '주택청약저축'과 한 묶음으로 작동할 때 효과를 발휘한다. 정부가 민간건설회사들의 주택 가격을 통제하는 대신 민간의 저축에다 국고를 보태서 재원을 지원하고, 토지도 강제수용해 싼 값으로 넘기는 방식을 동원한다. 이 제도의 핵심은 공공성을 띤 정부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수요자인 국민에게 아파트를 싼 값에 공급한다는 것이다.

주택정책이 표심 좌우… 선거 때마다 '헛공약'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김대중 정부가 건설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분양가를 자율화하면서 선분양제는 사실상 용도폐기됐다. 턱없이 오른 분양가로 선분양제의 또 다른 축인 분양가상한제가 붕괴됐기 때문이다. 98년 512만원이던 서울지역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는 8년 만인 2006년 1546만원으로 3배 이상 상승하는 바람에 2007년 다시 상한제가 도입됐다. 이 무렵 여야 정치권은 폭등하는 주택가격을 잡으려면 '후분양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었다. 한나라당도 2006년 "선분양제는 아파트 분양가가 폭등하는 현실에서는 개선돼야 한다"며 "후분양제는 주택가격 폭등의 투기적 수단으로 활용된 분양권 전매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후분양제는 결국 유야무야됐다.

김헌동 경실련 단장은 소비자가 지난 10년간 주택으로 '바가지'를 쓴 규모를 다음과 같이 추정했다. "민간기업 아파트건축의 경우 연간 시장규모가 100조원에 이른다. 그중 적정이윤은 10%선인 10조원 정도가 돼야 정상이지만 지난 10년을 거치면서 토건족의 이익 비율이 약 5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 비용은 150만~200만명의 아파트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넷째, 주택정책의 일관성 부재이다. 참여정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주택정책에는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을 유지해야 한다. 나쁜 정책보다 더 나쁜 정책은 일관성이 없는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주택시장 활성화를 '스테로이드'처럼 남용하면서 부동산경기에 의존적인 경제체질은 되려 약화됐다. 현재 우리 경제는 선진국에 비해 건설경기에 의존하는 비율이 2~3배 높다.

참여정부 때 국정홍보처에서 펴낸 < 대한민국 부동산40년 > 에서도 "부동산 시장의 신호등 기능을 해야 할 제도와 시스템들이 어떤 때는 빨간불에 건너지 말라고 했다가 상황이 바뀌면 빨간불에도 건너고 초록불에는 건너지 마라는 식"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부동산을 경기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하다보니 일관성없는 정책이 당연시됐다. 투기꾼들도 버티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학습했고 이는 부동산 불패론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01년 5월의 경우 신축주택에 대해 한시적으로 양도세를 면제했다가 불과 8개월 만에 '투기자 세무조사'에 나선 사례가 있다. 참여정부 후반기에 도입됐던 종부세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곧장 폐지된 것도 일관성을 크게 해쳤다.

정부통계를 신뢰할 수 없다는 시장의 지적도 있다. 최근 국토부는 산은경제연구소가 '집값 버블'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내자 "집값 버블은 없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최근 20년간 집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하회한다는 근거로 제시된 '집값'의 근거는 전국평균가격으로, 집값 상승이 집중된 강남 등 서울의 현상을 '희석'시키기 위한 편법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킨 대선은 '부동산 대선'으로 불린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서울 강남에는 종부세 폐지를, 강북에는 뉴타운 개발을 통한 자산증대를 약속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기간 주택가격 폭등으로 주택보유자와 비보유자 간에 격차가 커지고, 집있는 사람 사이에도 격차가 벌어진 '욕망'의 틈새를 정확히 읽어낸 것이다. 2008년 한나라당이 승리한 '뉴타운 총선'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참여정부 장기임대 정책… 정권 바뀌면서 흐지부지

우리 사회에서 '주택정책'은 늘 표심을 좌지우지하는 현안이다. 이 같은 독특한 현상에 대해 프랑스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는 저서 < 아파트 공화국 > 에서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은 인구 증가를 관리하고 봉급생활자들이 경제발전에 헌신할 수 있도록 가격이 통제된 아파트를 대량 공급했다. 중간계급들을 대단지 아파트로 결집시키고, 이들에게 주택소유와 자산소득 증가라는 혜택을 줌으로써 정치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주택개발정책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보다 '얼마만큼 이익을 창출할 것인가'에 집중했다. 2003년에는 도정법상 80%인 용적률을 250%까지 상향조정했고, 2006년에는 '뉴타운특별법'인 도시재정비촉진특별법이 시행에 들어가 재개발로 5~7배 이익을 남길 수 있는 틀이 마련됐다. 이 법에 따르면, 강남의 경우 재건축할 때 일부용지를 임대주택 용도로 환수하지만, 강북의 경우 오히려 국공유지를 얹어주고 용적률도 상향조정해준다. 여기에다 기반시설 개발까지 국가가 맡아줌으로써 재건축에 따른 이익을 한껏 부풀렸다. 역설적이게도 이 법안은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던 2005년 12월 국회를 통과했으나 2008년 총선에서 괴력을 발휘한 한나라당의 '뉴타운' 공약의 모태가 됐다.

이 같은 재개발은 철저히 내 집을 보유한 '중산층' 이상 또는 그에 상응하는 소득계층의 계급 욕망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청약통장제도' 등 정부의 주택정책이 중산층에 초점을 두고 하층계급 배려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재개발 열풍으로 집값과 땅값이 오르자 세입자들은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게 됐다. 심지어 가옥주라 하더라도 영세민일 경우 억대의 분담금을 내지 못해 밀려난다. 이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의 붕괴와 저소득층 증가라는 양극화 심화에도 불구, 해소책 모색을 등한시해온 정책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보금자리주택 공급도 결국 건설업자 특혜 구조

 

2004년 6월 열린우리당 당사 앞에서 열린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백지화' 항의집회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저렴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약속은 '선거공약'으로만 유용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92년 대선후보 당시 처음 주장했던 '반값아파트', 즉 토지임대부 주택은 2006년 11월30일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바 있다. 하지만 실현된 적은 없다. 집값 폭등으로 민심을 잃은 참여정부가 2007년 1월에 2017년까지 260만호의 장기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 역시 정권이 바뀌면서 흐지부지됐다. 그리고 2010년 현재, 이명박 대통령은 '반값아파트' 대신 '보금자리주택'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성달 경실련 시민감시국 부장은 "보금자리주택은 시세보다 싸게 공급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 김대중 정부가 추진해왔던 국민임대주택정책을 개정해 주택용지 안에 공공주택 비중이 당초 50% 이상에서 35%로 축소되고, 반면 민간에 매각되는 주택이 당초 50% 미만에서 80%로 늘어난다"며 "지난 정부가 약속했던 공공주택 공급이 260만호에서 80만호로 줄어드는 대신 건설업자들은 그린벨트 내에 집을 지어 추가수익을 올릴 수 있는 특혜구조"라고 비판했다.

■ 특별취재팀
= 최민영(사회부)·이주영(산업부)·김기범(사회부)·임아영(전국부) 기자, 김설아·황성호 인턴기자

 

(2부)우리 안의 욕망…④욕망을 부추기는 사회  특별취재팀 http://wherelive.khan.kr

 

 

ㆍ건설재벌 광고주에 길들여진 언론, 집값 상승 부채질

“언론이 객관적인 사실을 보도하지는 않고 투기심리를 조장해 국민을 ‘고분양가 아파트’의 제물로 삼아야겠습니까? 한국 언론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메피스토펠레스’란 생각이 듭니다. 건설재벌에 영혼을 저당잡히고 광고를 따내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큰 틀에서는 모두 마찬가지입니다.”(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부동산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가 건설사와 부동산업자의 입장에 편향됐다는 지적은 오래된 얘기다. 하지만 사실을 왜곡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관행은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다. 신문·방송이 사회 부조리를 감시·고발하는 기능을 하는 ‘언론’인 동시에 ‘사기업’으로서 수입의 절대량을 광고에 의존하는 이중적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이는 부동산 기득권 세력의 입장만 대변하고 높은 주거비 부담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을 도외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론의 정도(正道)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서울 강남 재건축 단지의 거래 증가와 가격 상승세가 2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중략) 강남 개포 주공1단지 51㎡도 12월 최고가 11억원에 육박하는 10억9800만원을 기록해 상승세를 유지했다. 송파구 가락동 시영1단지 41㎡도 최고가 5억7000만원을 보여 12월 최고가 5억5000만원보다 2000만원 상승했다.”

 

지난 2월17일 국토해양부가 내놓은 1월 신고분 아파트 실거래가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경제신문이 쓴 기사다. 기사만 보면 강남지역 아파트가 재건축에 대한 기대심리로 큰 상승세를 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국토부 자료에는 기사와는 다른 사실도 많다. 1월 전국의 아파트 거래량이 전달에 비해 25% 감소하며 3개월 연속 줄었다거나,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다른 단지에선 가격이 한달 전보다 3000만~1억원씩 떨어져 거래가 이뤄지기도 했다는 내용이다. 통계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강남 집값 상승에만 초점을 맞춰서 부동산시장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기사다.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주로 언급하는 ‘공급부족론’도 부동산 보도의 대표적인 왜곡 사례다. 지난해 하반기 전국적으로 미분양 주택은 공식 집계된 것만 12만가구가 넘었다. 신고되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이보다 두 배는 많을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오른다는 건설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썼다.

조선일보는 ‘지난 정부때 집 덜 지어…공급부족이 원인’이라는 제목의 기사(2009년 9월7일자)에서 “일부 지역이지만 단기 조정후 급반등하는 것은 주택공급 물량 감소의 영향이 크다. 노무현 정부는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해 재건축 규제, 분양가 상한제, 소형평형의무제 등 각종 규제를 가해 주택 공급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문화일보는 ‘주택공급 부족해 3년뒤 집값대란 우려’라는 기사(2009년 7월9일자)에서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 등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늘고 건설사들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사업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 우발채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대한건설협회 등 관련 단체들은 양도세 감면연장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분양 증가는 건설사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고, 일단 돈을 빌려 아파트를 지은 뒤 상황이 나빠지면 규제를 없애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일부 언론은 건설사들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했다.

헤럴드경제는 ‘세제 혜택·금융 지원 자금숨통 틔워야’(2010년 3월4일자) 기사에서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곧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엄습할 것”이라며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빌려 PF사업장 자금지원 등을 제시했다. 서울경제신문은 사설(2010년 2월12일자)을 통해 “양도세 감면조치는 극심한 어려움에 빠진 주택건설 업계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틔워주고 경기의 추가 침체를 막는 데 도움이 됐던 것으로 분석된다”며 정부 대책을 촉구했다.

선대인 부소장은 “언론은 집값 거품이 더 커지기 전에 꺼뜨려야 할 시기에도 정부에 끊임없이 각종 주택 사업 및 은행 대출 관련 규제완화를 주장해 집값 거품을 키우는 데 일조해왔다”며 “기득권 언론들은 건설업체들을 살려야 한국경제가 산다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문제나 개발사업에 대해 언론이 정치논리로 접근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김헌동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은 “언론사마다 각기 자기가 좋아하는 정치세력을 대변하는 기사를 쓰다보니 개발 공약이나 사업에 대해서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편향적으로 다루고 있다”면서 “중립적인 이야기나 대안 제시는 들으려 하지 않으며, 어떻게 푸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론이 건설업체나 부동산업자의 주장에 편향된 기사를 많이 쓰는 것은 광고 수익 등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국내 신문사의 경우 일간지의 광고수익이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부동산 광고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1998~2005년 6월 전국 신문사 광고수익자료에 따르면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전체 광고수익의 11~12%를 부동산광고가 차지했다. 지방신문들은 부동산 광고 비중이 최고 47%를 넘는 등 의존도가 더욱 높았다. 또 조·중·동의 경우 광고지면의 20% 이상을 부동산광고로 채웠다(민언련 2005년 자료). 신문사로선 광고주인 건설사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고, 이는 광고성 기사 게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수도권 일대의 ‘밀어내기 분양’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대거 늘어났지만 해당 건설사들이 지면광고 물량을 집중적으로 쏟아내면서 경향신문을 비롯한 주요 신문에 미분양아파트 투자를 권장하는 기사가 쏟아졌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선분양제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후분양제(집을 일정정도 지은 후 분양하는 것)에 대해 신문사들이 환영하지 않는 것도 후분양을 할 경우 아파트를 짓는 몇년 동안 광고수익이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와 무관치 않다.

 

 

 


한국언론재단 김성해 연구위원은 “삼성전자는 광고비의 90%를 해외에서 지출하는 등 소위 잘 나가는 수출기업들은 한국에서 광고를 많이 하지 않는다”며 “먹고 살 것이 점점 없어지는 신문사들로선 그나마 광고할 만한 내수 산업이 건설, 금융 등밖에 없다보니 노골적으로 기사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갑부’인 언론사 사주들의 영향력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서울 흑석동 단독주택은 공시지가만 79억5000만원(지난해 4월 기준)으로 삼성 이건희 전 회장 자택에 이어 두번째로 비싸다. 미디어오늘(2006년 10월29일자)에 따르면 방 사장 가족은 코리아나호텔, 흑석동 주택, 의정부 미군기지내 땅, 남양주 부동산, 가평 별장 등을 증여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역시 경기 양주, 이천, 충남 태안 등에 수십억원대의 부동산을 보유한 것을 2005년 주미대사 재임 시절 공개한 바 있다. 선 부소장은 “기득권 신문들의 종부세 비판 기사들은 고가 부동산 소유주인 구매력 있는 독자층에 영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주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주거의 사회학](2부)우리 안의 욕망…⑤ ‘삶은 없는’ 주거문화  이정전 | 서울대 명예교수

ㆍ개발주의에 매몰 … ‘사람’은 안보고 ‘주택’만 바라봐

판자촌이니 불량주택이라고 하면 우리는 으레 싹 쓸어버리고 거기에 새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세계 여러 나라의 빈민 주택을 연구한 어떤 학자는 판자촌이야말로 놀라울 정도로 경제적이고 과학적이며 인간적이라고 말한다. 가장 저렴하며, 주어진 공간과 지형을 최고로 잘 이용하고, 무엇보다도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곳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그저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판자촌이나 불량주택 마을을 전면 철거해버리고 그 대신 대형 아파트를 들어앉히는 주택정책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기존의 주택에 비해 아파트는 널찍하고 편리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파트는 감옥과 같이 인간관계를 단절시키는 시멘트 구조물이다. 대단위 아파트단지 건설은 기존의 판자촌이나 불량주택 마을을 없애버릴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던 훈훈한 인간관계의 망도 날려버린다.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좋은 인간관계가 우리의 행복에 점점 더 중요해진다. 소득수준은 계속 높아지는데 국민의 행복지수는 높아지지 않는 ‘선진국 병’의 주 원인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훈훈한 인간관계가 점점 바래지는 것이다. “사람은 보지 않고 주택만 보는” 우리나라 주택정책은 앞으로 ‘선진국 병’을 우리나라에 퍼뜨리는 데 일조할 뿐이다.

사람은 보지 않고 주택만 보는 전문가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기준에 입각해서 판자촌이나 불량주택 마을이 비위생적이고 비인간적이라고 단정한다. 그러고는 우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 주거기준을 정해서 이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거실, 화장실, 부엌 등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며 3인 가구라면 부부의 방과 자녀의 방이 따로 있어서 최소한 29㎡(8.8평)는 되어야 한다는 식이다. 그걸 누가 모르나. 중요한 것은 영세민들의 경제력이다. 최소 주거기준을 아무리 잘 정하고 그것에 맞는 주택을 공급한들 영세민의 지불능력을 크게 초과한다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설령 영세민들이 그런 주택에 실제로 들어가 살 수 있게 만들어주어도 이들은 오래 견디지 못하고 더 잘사는 사람들에게 팔거나 재임대하기 일쑤다.

 


결국 영세민들은 다시 판자촌으로 돌아가게 된다. 실제로 이런 일이 그동안 비일비재했다. 그러므로 최소 주거기준을 정하는 데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영세민들이 최소 주거기준에 맞는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을 갖추어주는 것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날로 심화되는 빈부격차가 더욱 더 걱정스럽다. 빈부격차를 줄이는 것이 우리나라 주택문제 해결의 중요한 실마리다. 흔히 우리나라는 토건공화국이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토건부문의 비중이 너무 높다고 해서 붙여진 악명이다. 토건부문은 온갖 부패와 비리의 온상으로 알려져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토건산업의 고용효과도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기조는 여전히 공급 우선 정책이다. 우선 공급부터 해놓고 보자는 식이다. 그래야 부동산가격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이런 논리는 투기성 유동자금이 별로 없을 때(가수요가 별로 없을 때)나 통하는 얘기다. 2005년 우리나라의 유동자금 규모는 약 800조원으로 추산되었다. 2007년에는 그 규모가 1000조원에 달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이 중 상당부분이 부동산시장을 넘나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부동산투기 열풍의 진원지는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과다한 유동자금이다. 무역수지 흑자로 해마다 막대한 수익금이 국내로 유입되어 소수의 부자들 손에 집중되면서 유동자금의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었다.

이렇게 투기성 자금이 천문학적 규모일 경우에는 아파트 공급물량을 최대한으로 늘린다고 해도 투기수요의 극히 일부분만 충족시킬 수 있을 뿐이다. 예컨대 500조원 규모의 가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5억원짜리 아파트를 100만채 지어야 한다. 가수요의 대부분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데, 1~2년 사이에 수도권에 아파트를 100만채 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급을 늘려도 가수요의 극히 일부분만을 충족시킨다면, 부동산가격을 떨어뜨리지 못하고 일부 투기꾼들의 투기 욕구를 만족시키는 정도로 끝나게 된다. 오히려 투기에 성공한 사람의 수를 늘림으로써 투기를 더욱 더 부추길 우려가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부동산투기 성공담이 널리 퍼져 있고, 이것이 부동산투기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투기 성공담이 부동산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부동산 실무자들도 잘 알고 있다. 요컨대 공급증대 정책은 투기에 성공한 사람의 수를 늘림으로써 오히려 투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정부는 아파트 공급을 지속적으로 크게 늘렸지만, 늘릴 때마다 아파트가격은 내리기는커녕 올라가기만 했다. 성공한 투기꾼들의 무용담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투기판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 결과 주택을 지나치게 돈벌이와 재산증식 수단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런 풍조 때문에 주택공급이 서민들의 주거안정보다는 채산성을 위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저렴한 소규모 주택 공급보다는 고가의 중·대규모 주택 공급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우리나라와 같이 빈부격차가 큰 나라에서 이런 결과는 당연한 것이다. 중·대규모 주택은 돈벌이가 잘 되는 반면, 소규모 주택은 경제성이 없다. 이렇게 중·대규모 주택 위주로 공급이 이루어지다 보면, 자연히 영세서민들이 살 곳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된다.

재개발이나 뉴타운 사업 등 전형적인 대규모 주택공급 사업들은 기존의 주택들을 전면 철거한 다음 아파트를 짓는 방식, 즉 ‘전면철거형’ 개발방식을 취하고 있다. 사업이 종료되고 나면, 철거된 주택들보다 훨씬 더 큰 주택들이 공급된다. 그러다 보니 사업 전에 그 지역에 살던 주민들, 특히 영세민의 대부분은 사업 후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게 된다.

예를 들어 서울 길음4구역 재개발사업의 경우 90%에 가까운 주민들이 사업 이후에 그 지역을 떠났다고 한다. 새로 지어지는 주택들은 대부분 아파트들이며 중소기업이 아닌 대형 토건회사들이 지은 집들이다. 그래서 재개발이나 뉴타운 사업은 서민들을 삶의 터에서 몰아내며, 도시의 미관을 망가뜨리고, 중소 건설업체들을 망하게 하는 사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어차피 빈부격차를 줄이기 어렵고, 그래서 영세서민들의 주거구입능력을 높이기 어렵다면, 서민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 물론 임대주택 공급에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채산성을 너무 따지다 보면 임대주택보다는 분양주택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주택정책 기조도 장기적으로 임대주택보다는 분양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는 방향으로 잡혀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앞으로 먼 미래를 내다본다면 이 정책기조는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이라는 저서에서 앞으로 임대문화의 시대가 온다고 예고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부자들은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쓴다고 한다. 자동차를 빌려 쓰면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오늘은 빨강색 스포츠카, 내일은 검정색 세단, 모레는 뚜껑 없는 노랑색 차 식으로 차를 마음대로 골라 탈 수 있다. 차를 소유하고 있으면 만날 같은 차를 타고 다녀야 하고 유지 관리비도 만만치 않다. 일주일에 한 번 쓸 청소기도 빌려 쓰는 것이 경제적이다. 냉장고, 가구, 세탁기 등을 빌려 쓰면 이사갈 때 매우 편하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이런 세상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재빠른 변신이다.

물장사 하다가 잘 안 되면 옷장사로 바꾸고, 옷장사가 잘 안 되면 음식장사로 바꾸고. 이런 변신이 긴요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부동산은 큰 걸림돌이 된다. 부동산의 최대 약점은 환금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의 소유는 변신을 어렵게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땅이나 건물도 소유하지 않고 빌려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미국과 가장 비슷한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머지않아 부동산 소유를 기피하는 풍조가 생기지 않을까.

▲ 이정전 교수는?

이정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67)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두 경제학의 이야기: 주류경제학과 마르크스경제학」(1993), 「토지경제론」(1991), 「분배의 정의」(1994), 「토지경제학」(1999), 「환경경제학」(2000) 등을 썼다. 또 「우리는 행복한가」(2008)를 통해서는 경제성장과 소득증대가 인간의 행복과 무관함을 역설했다. 경실련 환경개발센터 대표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 한국자원경제학회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시민단체인 ‘환경정의’ 고문과 기후변화센터 정책연구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거의 사회학]청약통장·전세·분양제 … 불로소득 권하는 정책 변질


서울 서초동의 한 모델하우스에서 주상복합 아파트 청약자들이 당첨결과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ㆍ‘한방’을 노리게 한 특유의 제도

‘집’은 작게는 개인의 사적 공간이지만 크게 보면 주택정책을 통해 자본주의 국가가 노동자인 구성원에게 갖는 가치관이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전상인 교수는 “주택정책은 기본적으로 체제의 안정과 재생산과 관련하여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갖는다”며 “아파트 공급 위주로 전개된 우리나라의 주택정책 또한 이런 시각에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저서 「아파트에 미치다」를 통해 지적한 바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열악한 주거는 노동자의 생산성을 떨어뜨려 장기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득이 되지 않는다. 또한 정치적으로 볼 때에는 1980년대 이후처럼 중간계급이 국가 주도의 주택공급정책에 따라 아파트를 보유하게 됨으로써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지지를 유지하게 되는 것처럼, 정치체제 유지 수단의 성격을 갖기도 한다. 그렇다면 2010년 우리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몇 가지 현상을 통해 변화를 살펴본다.

■ 청약통장

10년 전 가입한 청약 예금 분양가 비싸 무용지물… 그래도 가입자는 증가


직장인 박모씨(30)는 스무살이 되던 해 부모님이 ‘성년식’ 선물로 가입해준 청약예금통장을 갖고 있다. 300만원을 넣어둔 청약예금통장은 가입한 지 10년이나 된 데다 박씨가 무주택자이기도 해 아파트 청약시 1순위 자격은 떼놓은 당상이다. 그러나 박씨는 지난해 결혼 후 청약예금을 해지할까 고민 중이다. 아파트 분양가가 최소 3억원이어서 맞벌이를 한대도 절반 가까이 대출을 받아야 해서다. 박씨는 “분양가가 감당이 안 되는데 청약통장이 무슨 소용이냐 싶다”며 “차라리 통장을 깨서 전세보증금에 보탤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매달 몇 만원씩 정기적으로 붓거나 일정액을 은행에 예치해두면 아파트 청약시 1순위, 2순위 등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청약통장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한국 특유의 주택제도다. 70년대 산업화로 수도권 인구가 급증하고 주택 부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도입됐다. 당시 신규주택 공급은 추첨이나 선착순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이것이 부동산 투기와 소유의 편중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자 정부는 77년 청약부금 가입자에게 분양 우선권을 부여하는 등 공공주택의 공급 우선 순위를 설정해 주택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수요자들이 주택청약 상품에 가입해 붓는 예치금은 저리로 공공부문의 주택재원으로 사용됐다. 이후 민영주택까지 청약제도가 확대됐고 부금·예금·저축 세 가지 형태가 운영돼왔다.

오랫동안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곳간 같은 존재였던 청약통장은 2002년 이후 집값과 분양가격이 큰 폭으로 뛰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더 이상 ‘곳간’이 아니다. 주택공사 등 공공부문에서 분양하는 주택조차 외환위기 이후 ‘효율’과 ‘이윤’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정부의 정책기조로 자리잡으면서 가격이 크게 올랐다. 이 같은 상황은 주택의 자가소유를 촉진하는 우리나라의 주택정책상 처음 집을 장만하는 이들에게 주택 진입장벽이 높아진다는 문제를 낳는다. 지난해 서울시내 아파트의 평균 분양가는 3.3㎡(1평)당 1658만원. “월급은 제자리인데 집값만 오른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청약통장 가입자수는 외환위기 직후를 제외하고 거의 매년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5월 나이·주택 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청약종합저축이 새로 출시되면서 현재 개설 계좌수는 1400만개에 이른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젊은층에게 직업이 안정되지 않다 보니 빚을 내서라도 주택을 마련해 집값 상승에 따른 불로소득을 노리는 경향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 전세제도

집주인 목돈조달 수단, 세입자 보호는 허술… 정부임대도 중산층 중심


목돈을 보증금으로 걸고 주택을 세내는 전세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주택임대차 제도다. 외국에선 보증금 없이 매달 임차료를 지급하는 월세(미국·일본 등)나 국가에서 장기 임대(프랑스·싱가포르 등)해주는 게 일반적이다. 통계청(2005년)에 따르면 국내 전세가구는 356만가구(22%), 보증금 있는 월세가구는 240만가구(15%)에 이른다.

전세제도가 언제 시작됐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조선시대 말에도 집주인에게 일정액을 맡기고 거주한 뒤 나갈 때 돈을 돌려받는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60~70년대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전세금은 집주인에게 세입자의 신원을 보증하는 역할을 했다.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씨는 “주택 관련 금융이 발달하지 않은 가운데 전세는 목돈을 조달할 수 있는 손쉬운 방편이었고, 집값이 계속 올라 누구나 집을 사려는 상황에서 전세를 끼면 가진 돈보다 더 비싼 집을 살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고 전세제도가 발달한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거주기간이 2년밖에 보장되지 않는 민간부문의 전세제도는 임대차보호법이 있어도 실제 집주인과의 관계에서 세입자에게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임대료를 수천만원씩 올리거나 집을 빼달라는 요구 앞에 속수무책이다.

대안으로 정부가 공공보유주택을 국민에게 임대하는 방안이 모색됐고, 서울시의 장기전세주택(시프트)이 주목을 받았다. 주변 전세 시세의 80% 이하로 최대 20년까지 빌려 살 수 있도록 해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를 안정시키고 임대아파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입지가 좋은 곳은 전세보증금이 만만치 않다. 지난 3월 입주자 모집을 마친 은평3지구의 경우 보증금이 1억582만(59㎡형)~1억5200만원(84㎡형), 상암2지구는 1억900만(59㎡)~2억2400만원(114㎡)에 달한다.

한 주택전문가는 “결국 중산층 중심의 임대정책으로, 주택을 구입할 능력이 생기면 집을 비우고 임차가 필요한 다른 이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며 “정부의 주택정책 예산배분을 따져보면 자가주택, 임대주택, 저소득층 영구임대주택 순으로 중산층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 부동산 투기

한때 집값 95%까지 대출, 주택시장은 ‘투전판’…상위 5%가 주택 62% 소유


시세차익을 노리고 부동산 구매에 나서는 것을 ‘투기’라고 한다. 손정목씨는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 “우리나라 역사상 부동산 투기라는 행위는 적어도 60년대 전반까지는 거의 없던 현상”이라며 “66년 제3한강교 기공으로 양재역 동남쪽, 이른바 말죽거리가 복덕방 집단의 발상지가 됐다”고 적었다. 80년대 아파트 건설 열풍이 불고 강남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투기가 부동산 시장을 교란시켰다. 특히 장관 후보의 인사청문회 때마다 터지는 낯익은 쟁점으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집이 투기 대상이 되는 구조는 분양제도에서 시작됐다는 지적이다. 한국도시연구소 서종균 책임연구원은 “70년대 대기업들이 주택을 짓기도 전에 다 팔 수 있게 함으로써 대량 공급의 조건을 만들어준 것이 분양제도의 탄생”이라며 “일단 주택분양을 받으면 집값이 올라 목돈을 챙길 수 있으니 사람들이 줄을 서게 되고 사회 전체적으로 굉장히 비합리적인 구조가 만들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지만 무주택자는 여전히 존재한다. 경실련에 따르면 현재 주택 보유구조는 상위 5%가 전체 주택의 62%를 갖고 있으며, 토지의 경우 상위 1%가 52%를, 상위 5%가 82%를 갖고 있다. 이 같은 쏠림현상은 부동산 보유자가 가격 상승에 따른 불로소득을 거두는 현상을 심화시켰다. 2000년 무렵 정부 통계로 약 2200조원이던 우리나라 부동산 총액은 정부 통계로 약 4000조원으로 2배 상승, 경실련 추정치로는 약 8000조원으로 4배가량 늘어났다. 부동산을 가진 사람은 앉은 자리에서 돈을 번 것이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부동산 금융규제를 대폭 완화, 아파트 구입비용의 95%까지 대출을 허용한 것이 2006년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이뤄지기 전까지 유지되면서 부동산 투기는 전 사회적 현상이 됐다. 주택시장이 ‘투전판’이 되면서 시중에는 「종잣돈 700만원으로 부동산 투자 200억 만들기」 「부동산투자 베스트비법」 등의 책들이 즐비하고, 30·40대의 모임에서는 부동산 얘기가 교육문제와 더불어 단골 주제가 됐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일부 전문가들은 “집값 폭등과 버블이 확산돼 갑자기 부동산 거품이 붕괴된다면 우리 경제 전반에 회복하기 어려운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도 4대강 개발 등 대규모 토목공사와 함께 집값 부양책이 계속되면서 정부의 ‘부동산 연착륙 정책’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특별취재팀 = 최민영(사회부)·이주영(산업부)·김기범(사회부)·임아영(전국부) 기자, 김설아·황성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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