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의 나라

지주의 나라 2 (현대판소작료)

토건종식3 2018. 11. 4. 15:42

경향신문  [지주의 나라]

②50년간 쌀값 45배 올랐는데, 땅값은 4000배

ㆍ역시나…‘지주의 나라’ 증명
ㆍ경실련, 2015년 6704조 추산…GDP 증가액의 4배나 넘어

지난 50여년 동안 국내 땅값(민유지)이 약 4000배 급등해 국민들이 생산해낸 부가가치 총합인 국내총생산(GDP) 증가분의 4배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대표적 생필품인 쌀값은 45배 오른 사실과도 대비된다.

특히 역대 정권별로는 노무현 정부에서 땅값이 GDP 상승액보다 10배 뛰어 최대로 올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964년부터 국유지와 민유지 가격을 추산해본 결과 2015년 기준 국내 땅값은 총 8449조원으로 51년간 약 5000배나 뛰었고, 이 가운데 민유지만 6704조원으로 3943배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14일 밝혔다. 같은 기간에 80㎏짜리 쌀값은 3470원에서 15만7029원으로 45.2배 올랐다. 휘발유값은 1965년 ℓ당 23.65원에서 2015년 1510.4원으로 62.8배 상승했다.

경실련은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실과 함께 이미 발표한 땅값 추정치를 기준으로 시세반영률과 정부 발표 지가상승률 등을 적용해 1964년 이후 땅값을 추정했다. 경실련은 “공시지가가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가 주장하는 시세반영률 67%도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배경을 밝혔다.

땅값 상승을 정권별로 보면 노무현 정부에서 3123조원이 급등해 가장 많이 올랐다고 경실련은 밝혔다. 당시 땅값 상승액은 한 나라 안에서 땀 흘려 만든 모든 가치인 GDP 상승액의 10.4배에 이르러 최대였다. 땅값이 오르면 그 위에 집값이 상승하고 세 들어 사는 주민이나 자영업자가 물어야 할 임차료 또한 덩달아 뛰게 된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감시팀장은 “가파르게 오른 우리 사회 땅값, 집값은 무주택자의 내집 마련 꿈을 멀게 하는 등 부동산 소유자와 아닌 자의 양극화를 심화시킨 주범”이라며 “대한민국 경제가 국민이 땀 흘려 생산한 가치보다 사실상 별다른 노력 없는 ‘불로소득’을 키우는 데 열중해왔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ㆍ부동산 거품은 왜 꺼질 수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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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는 이제 끝났다. 부동산 불패의 잘못된 믿음을 깨뜨리고 거품을 제거하여 시장을 반드시 정상화시키겠다.”

참여정부 중반인 2005년 여름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기자회견에서 던진 이 말은 일순간 무주택 서민의 가슴을 뻥 뚫어줬다. 바로 ‘8·31 부동산 대책’ 발표였다. 여기에는 땅은 최대한 공유해야 한다는 참여정부의 ‘토지공개념’ 철학이 녹아 있었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민유지의 공시지가(재산세 등 과세기준)는 2015년 말 4500조원, 한국은행 추계로는 4830조원이지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추산한 바로는 6704조원이다. 공시지가가 실제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서다.

땅값 상승을 정권별로 보면 노무현 정부에서 3123조원이 상승해 가장 많이 올랐고, 임기 동안 연평균 상승액도 625조원으로 전체 평균(연 131조원)의 약 5배나 됐다고 경실련은 14일 밝혔다. 노무현 정부 다음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 243조원씩 총 1214조원 땅값이 올랐다. 연평균 땅값이 가장 적게 오른 때는 이명박 정부로 연평균 6000억원, 총 3조원 상승에 그쳤다. 그러다 2014년 8월 규제 완화에 나선 박근혜 정부에서 연평균 59조원씩 178조원 땅값이 뛰었다. 또 국민들이 땀 흘려 생산한 가치(국내총생산·GDP)는 1964년 7000억원이고, 땅값은 2.3배 높은 1조원 많은 수준이었다. GDP는 2015년 1559조원으로 상승했다. 이는 같은 기간 땅값 상승액의 5분의 1 수준이다.

정권별 땅값 변화는 국내외 경제상황에다 정책의 영향도 많이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경실련은 “오히려 박정희·전두환 정부는 강력한 분양가상한제로 건설사 이윤을 제한해 서민들을 위한 저렴한 주택을 공급했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의 반포주공아파트를 3.3㎡당 70만원에 분양한 게 일례다. 노태우 정부 때는 부동산 투기 몸살로 땅값이 상승했으나 ‘토지공개념’(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 개발이익환수제)을 도입한 데 의미가 있다.

땅값, 집값 거품을 급격히 키운 건 이른바 ‘민주정부’ 때였다. 김대중 정부는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대거 규제 완화를 추진했다. 선분양 때 분양가 자율화 허용, 그린벨트 해제 등이 대표적이다. ‘부동산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참여정부에서 땅값이 폭등한 것도 아이로니컬하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실 김헌동 보좌관은 “시민사회의 분양원가 공개 요구 등은 거절하며 미봉책만 발표했다. 여기에 국토균형발전을 내세워 혁신도시, 기업도시, 골프장 건설 등 무분별한 개발사업을 전국에서 벌였다”고 지적했다.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며 추진한 판교, 송파, 검단 등의 신도시에서 고분양 아파트가 속출하며 주변 집값까지 끌어올린 결과를 초래했다.

경실련은 “정부가 후분양제 도입,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도입,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을 추진했으나 분양원가 공개 같은 근본적인 부동산 안정책을 도외시한 채 추진돼 효과는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했다.

다만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가격 급등을 놓고 상반된 해석도 있다. 일단 경제호황 분위기에서 땅값, 집값이 오르는 건 불가피했다는 인식이 적잖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 때 집값이 떨어진 것도 미국발 금융위기 등 영향으로 경제가 나빠진 데 따른 결과라고 본다. 또한 공시지가를 현실화하면서 가격이 오른 측면도 제기된다.

경기 영향은 받았겠지만 과연 이것이 땅값, 집값 폭등의 주요인일까. 당장 박근혜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 상승은 경제가 침체되는 상황에서 나타난 점에서 경기와 동조된다는 설명에는 한계가 있다. 고도성장기 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 땅값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도 설명이 안된다.





진짜 문제는 투기 수요다. 이를 제대로, 특히 제때에 억제시키지 못하면 집값, 땅값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고 만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 가격 급등의 원인은 공급 부족이 아니라 투기 수요 때문”이라며 “분양권 전매제한 등을 통해 강남 재건축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건 잘못이다. 여론의 반발 아래서도 그것만 잡았어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감시팀장은 “LTV, DTI 규제가 필요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종부세 같은 세금 규제로 사회적 갈등에 부딪혀 효과는 별로 보지 못했다”며 “무엇보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분양가상한제, 분양원가 공개, 분양권 전매제한 같은 조치가 더 급선무였는데 노무현 정부가 오판했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예컨대 초과이익환수제 같은 경우 반발은 컸지만 당시 거둬들인 것은 수억원에 그쳤다. 종부세도 ‘세금폭탄’이란 갈등에 비해 효과는 적었다”고 말했다. 세금을 걷어서 환수하기 전에 분양 규제로 가격 급등을 막는 게 더 급하고 효과적이었다는 얘기다.

김대중 정부 때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량 양산됐고 이는 현재 사회 양극화의 주범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노동·교육 문제와 함께 서민의 삶을 옥죄는 주거 문제도 당시 정책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적잖다.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 아래 부동산 취득세·등록세·양도소득세 감면, 분양가 자율화에 분양권 전매 허용 등 각종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경제학계 원로인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국경제학회지 ‘한국경제포럼’에 게재한 논문에서 정책 후퇴를 비판했다. 이 교수는 “부동산 투기 억제의 기조를 단숨에 뒤집는 대대적 변화였지만, 외환위기로 인해 죽어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인식 때문에 별다른 저항에 직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주택 가격 이상 급등의 씨앗은 이미 김대중 정부가 뿌리고 간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두 차례 ‘민주정부’의 뼈아픈 경험이다.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1분.’ 촛불 시민혁명을 이어받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한국 민주주의에 새 역사가 각인된 시각이다. 다만 냉정히 보면 이는 1987년 민주화 체제를 겨우 되돌리는 작업의 하나일 뿐이다. 실질적 민주화를 향한 주요 이슈인 땅값, 집값 문제는 차기 정부에 ‘재시험 과제’로 넘겨졌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지주의 나라]

②50년 새 1만배 뛴 서울 땅값, 지방보다 119배 더 올랐다

ㆍ국토 1% 서울이 전체 땅값의 30% 차지…수도권 포함 땐 64%





서울과 지방의 땅값 격차도 지난 50년 동안 커졌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주로 수도권 땅값이, 박근혜 정부에선 지방 땅값이 더 뛰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4일 “서울의 3.3㎡당 토지 가격은 50년 전보다 1만배 넘게 올랐으며, 지방에 비해서는 119배나 더 상승했다”고 밝혔다.

1964년 3.3㎡당 땅값이 서울은 1000원이었고 수도권(서울 포함)은 평균 200원, 지방은 100원 정도로 서울 이외 나머지는 지역별 격차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15년 말 땅값은 서울이 1136만원으로 50년 만에 1만배 넘게 올랐다. 2015년 말 수도권은 124만원, 지방은 9만원으로 서울과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과 지방 사이 격차도 크다. 1964년 이후 50년간 서울의 땅값 상승액은 지방 상승액의 119배, 수도권은 지방의 13배나 됐다. 국토의 1%를 차지하는 서울이 전체 땅값의 30%, 8분의 1인 수도권은 64%를 차지하는 현실이다.

일례로 대표적으로 비싼 아파트인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는 1999년 분양 때 3.3㎡당 땅값(용적률 900% 환산 시)이 5508만원이었다. 입주 때인 2001년 1억1496만원으로 뛴 뒤 급등세를 이어가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4억258만원까지 올랐다. 8년 만에 3.3㎡당 3억4750만원, 6.3배 뛰었다. 1970~1993년 박정희 정부에서 노태우 정부까지 이 땅값은 총 3000만원, 연간 136만원 상승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하락세로 돌아선 뒤 2015년 3억3009만원이 됐다.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정·관계 인사들이 연루돼 특혜분양 사건이 벌어진 분당 정자동의 파크뷰 땅값도 비슷한 곡선을 그린다. 2000년까지 3.3㎡당 408만원 정도이던 땅값은 분양한 이듬해 1329만원으로 2.2배 올랐고 입주 시점인 2004년에는 4165만원(9.2배)으로 뛰었다. 2007년에는 최고 1억742만원(25.3배)까지 찍었다가 내려왔다. 두드러진 사례이긴 하지만 이런 경우를 보면 민주정부로 일컬어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땅값이 얼마나 부풀려졌는지 알 수 있다. 분당 파크뷰 3.3㎡ 땅값의 경우 정작 고도성장기인 박정희 정부부터 노태우 정부까지 22년 동안 연간 16만원, 총 356만원 올랐을 뿐이었다고 경실련은 밝혔다.

수도권과 지방 땅값 격차도 노무현 정부에서 가장 커졌다. 수도권과 지방의 땅값 변화를 정권별로 살펴보면 박정희 정부, 김영삼 정부, 박근혜 정부는 수도권보다 지방의 땅값이 더 많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의 경우는 부산, 대구 같은 지방 대도시 투기 과열 때문이다. 전두환·노태우·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는 모두 수도권 땅값 상승액이 지방을 앞질렀다.

경실련은 “지금의 땅값 거품을 유지하는 한 땅에서 발생하는 자산격차를 소득을 키워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도시와 농촌의 자산격차도 근본적으로 땅값 거품이 해결돼야 줄어들 수 있음을 방증한다”고 밝혔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