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건관료 그들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건교부서 '원가 공개' 개념 혼선 불러"
[뛰는 집값 못잡나 안잡나] 공사 완료 후 '확정가'와 분양 전 '예정가'를 같이 취급해 물타기
경실련 "건설사가 당국에 신고하는 예정가 검증이 원가 공개"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얘기가 나올 때마다 건설교통부가 논란을 흐리고 있습니다. ‘분양 원가’라는 기본 용어에서부터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리자는 작전이지요.” 날로 치솟기만 하는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를 둘러싼 시민단체와 정부의 의견이 맞설 때마다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그린다.
물론 양자의 입장 차이도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용어 설정 자체가 틀린 데 따른 것이라고 시민단체들은 주장한다. 우선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논의에 앞서 아파트 분양가가 정해지는 과정을 살펴보자. 아파트 분양은 처음 건설 계획이 세워지면 기본설계와 사업계획 승인-실시설계-감리자 모집-분양 승인(입주자 모집공고)-구매자와의 계약-시공-입주-유지 보수 등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때 아파트 건설 시행사는 모두 세 번에 걸쳐 관계 기관에 건설 원가를 신고한다. 사업계획 승인 단계와 감리자 모집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내기 위한 분양 승인 단계에서다. 모두 시공이 시작되기 전에 작성되는 이들 세 차례의 원가는 아파트 건설 원가의 예정가 혹은 협정가라고 할 수 있다. 이후 공사가 완료된 뒤 계산하게 되는 원가는 확정가인 셈이다.
시민단체, 특히 경실련은 이 과정에서 확정가가 아닌 예정가 단계에서의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확정된 건설가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절대 아니라는 것. 쉽게 말해 건설 비용이 얼마나 필요하게 될지 모르니까 ‘얼마가 들게 될지 따져 보고 나서 소비자가 계약을 해야 된다’는 논리다. 당장 눈앞에 지어 놓은 아파트가 있으면 물건(집)을 보고 사면 그만인데 보이는 집이 없으니 그 집을 짓는데 얼마가 들지 원가를 함께 계산해 보자는 취지에서다.
이에 대해 건설 회사들이나 원가 공개 반대 진영에서는 ‘영업 비밀이다’, ‘기술 개발에 투자한 자금이다’, ‘원가 절감을 못하게 한다’ 는 등의 이유를 내세운다. 헌데 그런 주장은 모두 건설 분양 ‘확정가’를 공개하지 못할 이유에만 해당된다는 것이 경실련의 지적이다. 대신 확정가 이전 3단계에서 원가를 모두 공개하는 데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건설 회사나 시공사의 주장처럼 아파트 건설에 실제 얼마가 들었는지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데에도 경실련은 동의한다.
계약 이후 시공을 잘해 내기 위해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원가를 절감하고 공기를 단축하는 등의 노력은 당연히 시행사나 건설업자의 몫으로 가야 한다는 것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기업에게 온당하게 이윤으로 가야 할 부분까지 공개하고 이를 가져가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자유시장경제의 논리에도 위배된다는 것. 그러나 경실련은 건설사가 시공 전 세 차례에 걸쳐 당국에 신고하는 건설 원가 ‘예정가’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모두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단계마다 가격이 축소, 혹은 과대하게 부풀려지는 등 왜곡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때 원가 결정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분양 원가를 누가 공개하고 검증하는냐에서부터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공개할지에 대해서도 현재는 허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오세훈 시장, 후분양제 후속조치 진행 부동산 정책 선점
건교부는 '분양원가 공개'위원회 구성에 아직도 시간 보내
“만약 오세훈 시장이 은평 뉴타운에 대해 1년 후 후분양을 하겠다고 발표하지 않았다면 노무현 대통령도 분양가 원가 공개를 얘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오세훈 시장의 최근 잇달았던 부동산 정책 발표를 두고 한 시민단체 간부가 털어놓은 얘기다. 서로 대결(?)하는 것도 아닐 텐데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약간의 시차를 두고 터져 나온 이들 두 인사의 발표만을 놓고 보면 일단 오세훈 시장이 더 많은 점수를 얻고 있다. 덕분에 오 시장은 부동산 정책과 관련 ‘오세훈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우선은 분양가 원가 공개보다 먼저 후분양을 약속했을 뿐더러 후분양 제도의 도입 효과가 더 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실제 오세훈 서울시장이 은평 뉴타운을 1년 후 공사가 80% 이상 완료된 후 후분양을 하면서 정확한 원가를 그때 협의해 결정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미 ‘결정된 사항’이다. 즉 아직까지 최종 실행이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실행이 시작돼 진행 중인 것. 시간만 흐르면 자연히 후분양제가 출생되는 결과를 낳는다.
반면 노 대통령의 분양가 원가 공개 발표는 엄밀하게 말해 아직 ‘임신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원가를 공개하기 위한 위원회 구성에 착수하고 있는데 이것은 원가 공개를 위한 필요충분 단계라고 할 수 없다. 사전 준비 단계에 불과할 뿐이며 그마저도 얼마나 원활히 이뤄질지 보장된 것이 없다. 한마디로 원가 공개가 발표됐지만 아직까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 근거다. 때문에 부동산값 폭등을 잠재우기 위한 서울시의 정책은 중앙정부보다 더 적극적이라고 평가 받는다. 아직까지 분양 원가 공개를 위한 위원회 구성에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설교통부는 여전히 미온적이라는 의심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오세훈 시장이 후분양제를 발표하게 된 계기나 계획을 언제 잡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오 시장이 후분양제 실시를 엉겁결에 결정해 버리기에는 그 자체가 부동산과 건설 시장에서 갖는 ‘위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의 한 간부는 “오시장의 발표를 듣고 ‘미쳤나?’라고 생각했다”며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어쨌든 오 시장 입장에서도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후분양제라는 뇌관을 그렇게 쉽게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오 시장 자신도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예전부터 공부를 많이 했고 또 고심해 왔다”고 결심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은평 뉴타운의 후분양제 실시로 앞으로 서울에서 짓는 공공 아파트는 사실상 모두 후분양제가 적용되게 됐다. 이미 서울시 전 지역이 투기과열지구도 지정돼 새로 건설되는 공공이나 공공택지를 분양받은 민간 아파트도 모두 후분양제를 적용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오 시장과 서울시는 후분양제 발표라는 선제 공격으로 고분양가에 들끓었던 민심을 잠재우는 동시에 부동산 정책 결정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며 “후분양제 발표는 궁극적으로 기존 주택공급 체계를 획기적으로 바꾼 셈이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