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분양시장을 왜곡시키는 제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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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다음 / 선대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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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자 위주의 아파트 분양시장
1.아파트를 짓기 전에 아파트를 분양해 시공비용을 조달하고 금융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2.주거생활 안정을 위해 조성된 공공택지를 독점적으로 공급받아 ‘땅장사’를 할 수 있다. 3.공공택지를 추첨 방식에 의해 시세의 절반 정도에 분양받으므로 추첨에만 걸리면 앉은 자리에서 최소 수백억원을 챙길 수 있다. 4.분양 원가와 상관 없이 주변 시세에 맞춰 수익을 극대화하도록 분양가를 ‘자율’로 정할 수 있다.
아파트라는 상품의 공급자인 건설업체들이 현행 제도 아래서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에 반해 소비자인 일반 국민들이 아파트시장에서 가지는 위치를 살펴 보자.
1. 짓지도 않은 아파트를 팜플렛이나 모델하우스만 보고 살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나마 실제 완공된 아파트는 팜플렛이나 모델하우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2. 내 집을 갖기도 전에 분양권 하나만 갖고 수억원을 2~3년씩 묶어 놓아야 한다. 3. 주거생활 안정을 위해 실시하는 공영개발에서 국민들이 직접 누리는 혜택은 별로 없다. 아파트 값은 매년 올라 ‘내 집마련의 꿈’만 갈수록 멀어진다. 4.아파트 값이 뜀박질하면 무리하게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산다. 아파트의 품질보다는 향후 집값이 얼마나 오를지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5.무리하게 은행 빚을 내 집을 샀다가 아파트 값이라도 내리면 은행 빚 때문에 생활비마저 아껴야 하는 고통을 겪는다.
아파트 시장에서 공급자인 건설업체와 소비자인 국민이 가진 위치는 이처럼 극명하게 나뉜다. 한 마디로 철저히 공급자 위주의 시장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수십 년이 지나왔다. 특히 개발연대를 거치며 건설업체들은 각 재벌사들의 모태 기업이 됐고 각종 정경유착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정부는 내수의 15~18%가량을 차지하는 건설업을 통해 경기를 조절하느라 온갖 제도적 특혜로 뒷받침했다. 각종 택지개발지구를 지정하고 건설 사업을 벌일 때마다 주변 일대가 투기지역으로 변하는 ‘투기 공화국’이 돼왔다. 그러니 시장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었고 소비자의 권리가 시장에 반영될 여지도 없었던 셈이다. 한 마디로 아파트 분양시장은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투기판’이나 다름없었던 것. 이처럼 정상적인 시장과는 거리가 먼 아파트 시장을 두고 노무현 대통령은 ‘장사의 원리’를 거론하며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반대 방침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값 거품을 빼는 작업도 결국 투기 수요와 공급자 논리만 득세하는 아파트 시장을 수요-공급의 시장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으로 바꾸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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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분양제 정책의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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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모델하우스의 모습 | 그렇다면 아파트 시장을 왜곡하는 제도에는 어떤 게 있을까. 먼저 선분양제다. 선분양제는 건설업체가 아파트를 짓기 전에 예비 입주자들에게 아파트를 미리 분양하는 제도다. 선분양제는 건설 사업에 들어가는 공사비 등 각종 비용을 입주 예정자들로부터 공사 전에 확보할 수 있어 건설업체가 추가로 금융비용을 물지 않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제도다. 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파트의 품질도 따지지 못하고 수천만~수억원의 돈을 몇 년간 묶어놓아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선분양제가 공급자인 건설업체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때문에 선분양제 대신 후분양제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불거질 때마다 건설업체들은 ‘후분양을 하면 금융비용 때문에 건설사들이 망한다’ ‘주택 공급 물량이 줄어 결국 아파트 가격이 올라간다’는 등의 논리를 대며 반발해왔다. 현 정부 들어서도 대통령직 인수위의 건의로 노 대통령이 건교부에 후분양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한 뒤에도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심지어 건교부도 대통령 지시에도 불구하고 미지근한 자세를 보이다가 올 2월에야 후분양제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방안을 자세히 뜯어보면 정부가 후분양제 추진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건교부는 이 방안에서 주택공사와 시도별 도시개발공사, 수자원공사 등 공기업은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도입, 2011년 이후에나 후분양제를 전면 실시하도록 했다. 노대통령이 퇴임하는 2007년경에 후분양제를 실시하는 주택 규모는 1000가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민간기업에 대해서는 주택기금 우대지원 및 공공택지 우선공급 등의 인센티브를 주되 ‘업계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이와 관련, “사실상 시늉만 하다가 정권이 바뀌면 어물쩡 넘어가겠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건교부 안은 후분양제 실시 방안이라기 보다는 ‘후분양제 미루기 방안’이라는 것이다.
택지분양제도는 '로또'인가? "최고가낙찰제 시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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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동백지구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
건설업체들만 공공택지를 시세의 절반 이하 가격에 독점 공급받을 수 있는 제도도 건설업체들의 폭리를 부추기고 아파트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 원래 토공은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라 주택난 해소와 부동산 투기 억제, 지가 안정 등을 목적으로 토지를 강제 수용해 택지를 싸게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택지분양제도는 과거 정부가 분양가를 규제하면서 건설업체에게 싼 값에 택지를 공급하는 대신 분양가를 낮추게 해 개발 이익이 국민에게 돌아가도록 한다는 전제에서 도입된 제도다.
그런데 정부는 98년 2월부터 분양가를 자율화하면서도 공공택지는 건설업체 가운데 추첨해 공급하고 있다. 이 같은 택지는 보통 시세의 30~40%가량에 불과해 택지를 공급받으면 건설회사들은 앉은 자리에서 수백~수천억원을 벌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이들 택지를 가리켜 ‘로또 택지’라는 말까지 나왔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토공은 수도권의 경우 택지를 평당 300만원 선에 분양한다. 이렇게 택지를 분양 받은 시행사는 이 택지를 평당 700~800만원선에 다른 건설업체에 넘기거나 시공사에 하도급을 주고 분양만 대행한다. 하지만 건설업체는 이렇게 택지를 싸게 분양받고도 분양가를 주변 아파트 시세 수준에 맞추는 경우가 많아 결국 땅값만으로 엄청난 차익을 보게 되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거의 모든 주택건설업체들이 로또 택지를 서로 분양받기 위해 일종의 유령 회사인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를 경쟁적으로 만들어 택지 분양 추첨에 참가한다. 한국주택협회에 따르면 98년 1200여개사에 불과하던 주택건설업체 수는 올해 9000여개로 늘었다. 1년에 1600개사가 늘어난 꼴이다. 그런데 이들 업체 가운데 60%이상이 아파트 공사 실적이 하나도 없는 업체들이다. 건설사들이 택지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만든 유령회사들이기 때문이다. 상당수 대형 건설사들이 지역별로 두세 개씩, 수십 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거느리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렇게 ‘로또 택지’를 먹으려는 페이퍼 컴퍼니가 늘다보니 2001년 용인죽전지역의 공개청약경쟁률이 50대 1정도였지만 지난 해 공급된 경기 고양 풍동택지지궁의 택지 공개청약경쟁률은 186대 1까지 치솟기도 했다.
공공택지를 분양받은 건설업체는 시행사가 돼 시공사 선정 시 공공연히 개발이익 보장을 요구하기도 한다. 입찰을 통해 최고의 개발이익을 보장해주는 업체에 시공을 맡기는 것이다. 사실상 땅을 파는 것인데도 형식적으로는 시행사가 시공을 맡기는 형식이므로 양도소득세는 전혀 물지 않는다. 이 같은 개발이익은 보통 수백억원 대에 이른다. 이렇게 시행사의 개발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시공사는 분양가 책정시 시행사 이익을 포함시키는 건 당연하다. 이 같은 ‘유통 마진’의 증가는 최소 10~20% 분양가 인상 내지 아파트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경실련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건설업체들이 ‘로또 택지’를 분양 받아 챙긴 이익만 최소한 5조원 가량에 이른다고 한다. 건설교통부는 페이퍼 컴퍼니의 난립을 막기 위해 택지 분양에 참여할 수 있는 건설업체의 요건을 제한할 방침이지만 공공택지의 독점 분양 특혜를 없애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전직 건설업계 간부는 이에 대해 “땅 값 안정을 위해 개발하는 공공택지의 개발 이익을 ‘재수 좋은’ 건설업체들이 불로소득으로 챙기는 꼴”이라고 말했다. 이 간부는 “시행사와 시공사의 나눠먹기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택지를 분양받은 업체가 시공까지 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실련 아파트 거품값 빼기운동본부 김헌동 본부장은 “택지개발지구의 공공택지를 민간에 팔 때는 가장 높은 가격을 주는 업체에게 택지를 매각하는 최고가낙찰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택지개발지구 건설사 거의 100% 담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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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이 청와대 앞에서 분양가 원개 공개를 주장하고 있다. | 분양가 자율화는 제대로만 작동한다면 아파트 시장의 건전화에 도움이 되는 시장 친화적 제도다. 종래 아파트 분양가를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규제하던 것에서 벗어나 분양가를 시장 자율에 맡겨 소비자에게 양질의 아파트를 제공케 하기 위해 99년 도입한 제도이기 때문.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투기 수요에 편승해 건설업체들의 폭리를 보장해주는 제도로 변질돼 버렸다. 분양가를 자율화한 98년 이후 수도권의 아파트 분양가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이전보다 2~3배 정도 오른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분양가 자율화로 기대됐던 업체간의 가격 및 품질 경쟁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 업체간 분양가 담합 등으로 인해 업체들이 최고 이익을 남기는 분양가 책정이 다반사였다. 택지지구 내 업체간 분양가가 큰 차이가 없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실례로 지난 달 11일 용인 동백, 죽전지구에서 11개 건설업체가 분양가를 담합한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모두 25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건설업체의 분양가 담합 사실이 적발된 것은 처음이지만 분양가 담합은 건설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공공택지개발지구에는 보통 10여개 이상의 업체들이 개발에 참여하기 마련인데 이들 업체들은 시행사-시공사 협의회를 운영한다. 이들 협의체는 간사업체를 선정하고 공동 경비를 모아 홍보비 등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분양팀, 건축팀, 인허가 관련 팀, 개발팀 등 분과별 협의체도 꾸린다. 이후 분양 과정에서는 주변 아파트 시세 등을 고려해 각 업체별로 최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분양가를 맞추게 된다는 것. 관련 지방자치단체 등이 업무의 편의를 위해 오히려 이 같은 ‘관행’을 장려하기도 한다. 한 전직 건설업체 간부는 “담합 의혹을 피하기 위해 분양가를 조금씩 다르게는 하지만 사실상 택지개발지구에서는 거의 100% 담합이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분양원가와 상관 없이 주변 시세에 맞춰 분양하면 엄청난 폭리를 챙길 수 있는데 누가 경쟁하겠느냐”며 “업체간 경쟁을 촉진해야 할 분양가 자율화 제도가 사실상 업체의 폭리를 보장해주는 제도로 바뀌어 국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건설업계는 시장경제 원리와는 거리가 먼 특혜구조를 지키기 위해 온갖 핑계를 대며 저항해왔다. 주무 부처인 건교부는 이들의 요구를 충실히 수용해왔다. 그동안 주택건설업계는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는 시장경제원리를 줄기차게 주장하다가 불리할 때는 시장원리에 맡기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95년 아파트 선분양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감사원의 권고에 따라 정부가 97년부터 시장원리에 맞게 후분양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이때 주택업계는 시장원리에 입각해 후분양제를 시행하려면 먼저 시장원리에 위배되는 분양가 규제부터 자율화하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정부는 98년 선분양제를 유지한 채 분양가 전면 자율화를 실시해 건설업체의 입지만 강화했다. 현 정부 들어 후분양제 도입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자 주택건설업계는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주택건설업을 포기하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므로 시장원리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이율배반적인 논리를 댔다. 건설업계의 설득이 먹혀서인지 건교부는 민간업계의 후분양제 도입을 사실상 포기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한양대 디지털경제학부 임덕호 교수는 “최근 정부는 공급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그래서 폭리를 취할 수 있는 현재의 주택시장구조가 경제적 논리에 합당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며 “부동산 투기는 정부가 ‘경제적 논리’를 무시하고 선분양제 같은 반시장적 제도를 고수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폭리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주택시장구조를 개선해 건설업계가 ‘땅장사’에 치중하기보다 경영을 투명화하고 기술 및 품질경쟁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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