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오적

관료의 퇴로는 이익단체, 재벌기업인가?

토건종식3 2006. 3. 15. 03:09
2006년 1월 31일 (화) 11:02   한겨레21
대한민국 ‘건산복합체’의 폭주

[한겨레] 퇴임한 건교부 관료들을 끊임없이 관련기관으로 불러들이는 ‘회전문 현상’
건설자본과 공무원의 유착관계에 뇌물 수수 등 공직자 비리 끊이지 않아


▣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1961년 1월17일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퇴임 연설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거대하고 음험한 세력의 위협을 받고 있다. 그것은 군산복합체라고 할 수 있는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군산복합체는 군 장성이 관료 생활을 거쳐 방위산업체로 전직하는 이른바 ‘회전문 현상’에 의해 지탱돼왔다. 군은 기업에 군사기술을 이전하고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무기 체계를 구입하며, 기업은 군 장성의 퇴임 뒤 일자리를 제공하고, 정부는 이들을 위해 ‘전쟁’이라고 이름 붙은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선다. 군사비는 계속 증가하고 군인-관료-방위산업체의 유착관계도 지속된다.

퇴직자 177명 가운데 134명 재흡수

군사강국이 아닌 우리나라에는 언제부턴가 ‘군산복합체’ 대신 ‘건산복합체’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듯하다. 몇 해 전부터 학자들 사이에서는 ‘신개발주의’라는 용어가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일부 학자들은 “대한민국은 토건공화국”이라고 정의 내리기를 서슴지 않는다. 건설교통부와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건설자본들이 법과 제도를 주무르며 전 국토를 황폐한 공사장으로 만들고 있다. 그 고리를 잇는 것은 퇴직 뒤 건설업계와 그 산하 연구소로 흡수돼 들어가는 고급 공무원들이다.

<한겨레21>이 1995년부터 지난 3월까지 건교부에서 퇴직한 3급 이상 고위 공직자 명단(177명)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해 그들의 재취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 전체 퇴직자 177명 가운데 134명이 건교부 관련 단체와 산하기관 74곳에 흡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6명은 관련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명예 퇴진하는 아픔을 겪었다(<한겨레21> 580호 표지이야기 ‘어허, 건설오적 재주 좀 봐라!’ 참조). 2004년 6월 현재 건설업계의 이익단체라고 볼 수 있는 건교부 산하 55개 기관에서 임원을 차지하고 있는 건교부 임원 수는 46명이나 된다. ‘돈 먹는 하마’로 이미 전락했거나, 전락할 것이 불보듯 뻔한 민자 고속도로 5개 회사의 사장 가운데 2명도 건교부 출신 관리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 경제에서 토건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우리가 통제할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대한민국 경제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성장하려면, 앞으로 더 많은 산과 논과 바다를 지금과 같은 속도로 허물고, 뒤엎고, 메워야 한다. 2002년 현재 건설업계가 수주한 총공사액은 118조원으로 국내총생산 596조원의 19.8%에 이른다. 토건공화국이라는 학자들의 지적은 더 이상 레토릭이 아닌 말 그대로 ‘현실’이다. 조명래 단국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한국 정부는 경제 발전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서 경제 조절 역할을 시장에 맡기는 신자유주의적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간척지 조성, 신도시 공급 등 국토에 대한 정책적 개입은 최근 들어 더 강화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들어서도 △행정복합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 토건공화국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조처들이 이어지고 있고, 서울시에서는 뉴타운 개발사업으로 이에 화답한다. 그나마 2004년부터 경실련을 중심으로 한 분양원가 공개운동 등으로 건설자본의 폭주가 어느 정도 다스려진 게 다행이다.

비리 공직자, 건설·토지관련이 1등

그 틈바구니에서 비리는 싹튼다. 국가청렴위원회가 2002년부터 2004년 말까지 각종 비리 혐의로 잘린 공직자 1076명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220명이 건설·토지 관련 비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실련은 2005년 4월,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 뇌물을 주고받은 혐의로 사법 처리된 1047명 가운데 64.2%인 673명이 건설업계 관련자라고 밝히기도 했다. 서울~춘천 고속도로 개발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잡음들은 어쩌면 대한민국 건산복합체가 미친 듯한 폭주를 이어가기 위해 저질러야 했던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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