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민주화’ 위해 노동·소비자 보호 강화를 | |
[한국 민주주의 대토론] 새로운 경제모델 가능성 2010-04-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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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홍종학(경원대 교수·경제학)
I. 87년 체제를 전후한 한국경제의 진단
자본과 자연자원이 부족한 한국경제는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택했다.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본적인 투자재를 수입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수출 증대를 목표로 삼았다.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와 정부의 유도에 의해 증가한 국내저축을 집중적으로 일부 대기업에 지원해 육성한 것도 적은 자본으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보고자 하는 고육책이었다. 이러한 정책에 힘입어 대기업에 우수한 인적자원이 몰렸고, 대기업은 저렴한 자본과 우수한 인력을 통해 고속으로 성장했다. 이른바 한국경제의 불균형 성장전략은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과 정치적 격변을 무사히 넘기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으나, 점차 한계를 노정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성장은 자본과 노동 등 생산요소의 투입량을 증가시키는 방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크루그만(Krugman)이나 영(Young)의 이론이 제기되었고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는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간주되고 있다. 크루그만은 고속성장하고 있는 아시아 경제를 1950년대 소련 경제와 비교하며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에 의한 요소투입형 성장전략은 곧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한국경제는 이미 1980년대 중반 이후 성장률 자체가 둔화되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경제는 87년 6월항쟁을 전후하여 구조적으로 변화했다. 성공적으로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게임을 치르면서 3년 연속 10% 이상 경제성장을 달성한 사상 최고의 성장기였다. 그러나 성장측면에서의 전성기는 동시에 한국경제가 구조적으로 변화한 시점이기도 했다. 87년 체제가 경제체제의 변화를 가져왔는지 아니면 내재적 한계로 인해 변화가 시작된 시기에 87년 체제가 시작되었는지를 밝히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경제구조의 변화는 점진적이라는 측면에서 87년 체제가 들어서자마자 경제구조의 변화를 촉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제구조의 변화가 내재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성이 높다. 그러나 인과관계를 차치하고서도 구조적 변화의 시점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한국경제의 현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분석의 편의상 1970년에서 현재까지를 다음과 같이 4기간으로 구분했다.
제 1 기 : 1970년 - 1980년 평균성장률 10.3%(1970, 1980년 제외) 제 2 기 : 1981년 - 1988년 평균성장률 10.2% 제 3 기 : 1989년 - 1998년 평균성장률 7.6%(1998년 제외) 제 4 기 : 1999년 - 2009년 평균성장률 5.0%
기간별 차이점을 국내총생산(GDP)의 지출측면에서 나타낸 것이 그림1이다. 특히 1988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에 구조적 변화가 뚜렷하다. 먼저 민간소비의 국내총생산 대비 비중이 1970년 75% 수준이었다가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1988년 50%를 하향한 후 다시 서서히 증가하여 최근 몇 년간은 55%에 다소 못미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988년 이전 민간소비 비중이 줄어든 것은 다른 지출의 증가로 전환되었다. 이는 다시 두 기간으로 나뉠 수 있는데, 1980년 이전에는 투자의 증가가 가파르고, 1980년 이후에는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공제한 순수출의 증가가 주목할 만하다. 이 후반 8년간에 투자지출은 전반적으로 줄어들어 12% 대였다가 후반에 다소 상승했다.
개방의 가속화는 환율의 변동성을 높였는데, 85년말 890원까지 상승했던 대미달러에 대한 원화환율은 경상수지 흑자에 힘입어 1988년말 684원까지 떨어진다. 그 이후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들면서 서서히 상승하여 외환위기 이전까지 800원대에서 움직였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1997년말 달러당 1400원을 넘기도 했으나 점차 하락하여 2007년에는 938원까지 내렸으나 그 이후 정부의 인위적인 고환율정책과 경제위기로 인해 다시 상승했다. 외환위기 이후 주목할 변화는 투자지출이다. 1980년대와 비교하면 투자지출 비중은 줄어든 반면 건설지출 비중은 늘어났다. 외환위기 이후 단기적 경기부양에 치중한 결과 투자지출보다는 건설지출의 비중이 증가한 것인데, 최근까지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1988년 이후 경제적으로 주목할 변화는 급격한 건설투자 비중의 증가이다. 노태우정부 당시 200만 호 주택건설을 비롯하여 대대적인 건설붐이 일었다. 1987년 14.4%에 불과했던 건설투자의 국내총생산 대비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하여 1991년에는 무려 23.4%까지 상승한다. 그 이후에도 건설투자 비중은 계속 20% 이상을 유지하다가 외환위기 이후에 비로소 20% 이하로 하락했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2000년 16.1%까지 하락했던 건설투자 비중은 정부의 대대적인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인해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2년 이후에는 17-18%대에서 유지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토목건설 비중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다시 최근 경제위기를 맞아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토목건설을 통해 경기부양을 하고자하는 전통적 경제운영방식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II. 민주화와 규제완화, 금권정치
1. 금권정치의 태동
87년 체제는 일반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갖게 했다. 명예로운 6월항쟁의 결과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고도성장국가가 되었고, 특히 지역이나 계층을 아우르며 함께 독재정권을 종식시켰기 때문에 사회통합의 인식은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이러한 사회통합을 바탕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통해 국민 모두에게 경제적 혜택을 주리라는 기대가 높았다. 6월 항쟁 이후 노동자의 기본권은 신장되었고, 생산성 증가에 맞춰 임금이 상승하는 계기가 되어 이러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화의 효과를 일반 국민이 실감하기에는 제반 법률적, 정치적, 사회적 제도와 장치는 미비했다. 이러한 기반제도와 장치를 구축하는데 상당한 기간이 필요했지만, 독재정부하에서는 불필요한 장치에 불과했다. 명예로운 6월 항쟁이었지만, 갑작스런 독재권력의 붕괴에 따른 부작용이 드러났고 권력의 공백현상이 발생했다. 시장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시장경제에서 자의적인 심판 역할을 했던 절대 권력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와 장치가 미비했다. 서구사회에서 민주화는 시장경제에서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정립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고, 시장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복지제도를 쟁취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시장에서의 자발적 거래는 거래 참여자의 후생을 증대시키면서 경제발전을 촉진하지만, 다양한 경제주체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면서 갈등이 빚어지는 곳이다. 이러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데 있어 공정한 경쟁 규칙은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이렇듯 사회적 여건은 갖춰지지 않았지만 경제개혁에 대한 대중적 욕구는 매우 높았다. 불균형 성장전략의 핵심이었던 재벌체제에 대한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대안은 명확하지 않았다. 반면 유럽형 사민주의 방식의 경제운영을 우려하는 재계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당시 영미에서 시작된 규제완화를 통한 체제개편을 추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균형 성장 전략으로 거대해진 재벌은 자의적인 정치권력의 재단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재벌의 구성원들조차도 87년 체제에 찬성한 것도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국가주도의 발전전력은 한계에 도달한 반면 자의적인 간섭의 부작용은 커졌기 때문이었다. 군부 통치의 연장이었던 노태우 정부까지만 하더라도 아직 재벌에 대한 자의적 규제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점차 민주적인 대통령 선거가 이루어지면서 정치세력간의 경쟁은 재벌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또 다른 요소는 관료들이었다. 직업관료들은 과거 독재권력을 지탱하는 도구의 기능을 해 왔기 때문에, 87년 체제하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 처했다. 권력의 공백기에서 주도적으로 시장에서의 공정한 규칙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주체가 되기에는 존립기반이 취약했다. 독재권력하에서의 경제운영방식이었던 관치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그 위상과 기반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외형적으로 규제완화는 이러한 관치와 재벌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학자들은 규제완화를 요구했다. 이미 확고한 기득권을 확보한 재벌의 입장에서 규제완화가 입지를 강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포착한 때문이었다. 규제완화로 인해 미래에 경쟁이 촉진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었고, 특히 세계적인 기업과의 경쟁을 대비하여 국내 재벌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논리는 재벌의 입지를 강화했다. 관료의 입장에서는 어느 부문에서부터 규제완화를 할 것인지에 대한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었다. 관료의 이해관계를 가급적 저해하지 않으면서 반면 규제완화로 인해 가장 부작용이 클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할 수 있다면 관료들은 관치를 상당 기간 지속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사실상 관료와 재벌의 연합세력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 불균형 성장전략으로 인해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확보한 재벌 대기업은 규제완화를 통해 무차별적 사업확장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시장지배력을 갖춘 곳에서는 이를 이용하여 독점적 이윤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노동생산성 격차가 1988년에는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 노동생산성이 55% 내외를 기록하다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02년에는 34% 내외까지 도달했다. 정리하자면, 한국경제가 구조적 변화기에 진입한 시기에 정립된 87년 체제는 경제운영의 주체면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절대권력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강력한 정치세력이 등장하지 못했기에 재벌은 이제 정치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피동적 객체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육성하여 경제를 장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민주화는 정치권력의 불확실성을 높였고, 이는 장기적으로 유지가능한 경제권력의 주도력을 강화했다. 재벌이 정치세력과 관료를 장악한 금권정치 시기가 열린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재벌을 견제할 수 있는 독립적인 주체인 노동자나 소비자 단체 또는 다른 기업 단체가 활성화되지 않은 가운데 이루어진 정치 민주화는 구조적으로 경제 민주화를 견인할 수 없었다. 또한 경제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 민주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되기도 힘들었다.
2. 반복되는 위기
금권정치와 재계의 요구에 의한 규제완화, 기형적 관치는 한국경제에 반복적으로 위기를 초래했다. 삼성자동차의 진입허가에서 드러난 바 있는 무원칙한 규제완화는 곧 재벌간 투자경쟁으로 이루어졌고, 반면 은행들은 재벌의 무분별한 확장을 제재하기 보다는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가 해결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속에 경쟁적으로 재벌을 지원했다. 금융개방으로 인해 유입된 해외자본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시장 규율이 없는 상황에서 이는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한경쟁으로 이루어졌다.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지 못하는 외형적 경쟁은 격화되었으나, 부실한 기업을 퇴출시키는 규율은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재벌의 연쇄 도산과 금융부실,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경제위기를 맞게 되었다. 87년 체제의 한계가 드러난 생생한 증거였으나, 재벌과 관료에 의한 경제운영을 대체할 수 있는 세력과 대안을 찾지 못했던 국민의 정부는 금권정치와 이를 지탱하는 경제관료들의 연합을 혁파하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 역시 사회통합을 기반으로 하는 성장정책을 추진하는 유럽형의 경제운영 방식은 시도도 하지 못한 채,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은 규제완화 정책을 유지했다. 그 결과 재벌과 은행의 시장 지배력은 더욱 강해졌으며, 해외에서의 벤처기업 붐에 편승한 코스닥 거품이 붕괴해 중소기업을 무너뜨리는가 하면 많은 시민들의 피해를 낳은 신용카드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는 그 이후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이어져 한국경제의 체질을 더욱 약화시켰다. 참여정부에서 정치, 사회적으로 개혁을 추진했지만 노동자와 소비자의 견제력을 강화시키려는 노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치, 사회 개혁에 비해 경제 민주화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이 역시 경기부양을 위해 기존의 관료에 의한 경제운영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관료집단은 정치세력과 독자적인 세력으로 기반을 확고히 했다. 경제 개혁과 정치, 사회적 개혁이 상호 보완적이기 때문에 결국 각 방면에서 개혁의 성과를 내기는 힘들었다.
III. 세계화와 양극화
한국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구조적 변화를 겪던 1987년을 전후해서 세계 경제도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었다. 세계화와 기술발전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국가간 경쟁이 격화되었고, 서서히 신흥 개발도상국이 부상하는 시기였다. 세계 수출총액에서 주요국의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아래 그림을 보면, 미국의 지배적 지위가 1970년대 중반까지 약화되다가 그 이후에는 안정된 반면, 70년대와 80년대 급격하게 부상한 독일과 일본은 1987년을 전후하여 점차 그 위상이 약화되었다.
1997년의 외환위기를 전후해서 한국경제가 선진국에 대해서는 기술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후발 개발도상국에게 가격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 것은 이러한 국제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의 제4기간 중에는 중국 경제가 급속히 성장했다. 중국은 2009년에 세계 수출 1위국이 될 정도로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급속도로 커졌다. 중국 뿐 아니라 브라질, 러시아, 인도의 대형 개발도상국의 발전속도가 빨라졌다. 이들 신흥 개발도상국, 특히 중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은 전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이 세계 제조업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가격 경쟁에서 뒤처진 기업들은 타격을 입었다. 특히 저임금 미숙련 노동자들이 집중적으로 영향을 받았고, 이는 전세계적으로 산업과 노동시장에 있어서의 양극화를 초래했다. 각국 경제는 중국과의 경쟁부문과 비경쟁부문으로 나뉘어 양극화가 진행되었다. 한국의 경우에는 그동안 단순 비숙련 노동에 의존하던 중소기업 부문이 경쟁의 압력을 견디지 못했고, 비숙련 노동자들은 대거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반면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발전에 혜택을 입은 대기업 부문은 기술발전으로 인해 고용을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전반적으로 숙련 노동자의 증가율이 줄어들었다. 이렇듯 세계화와 기술발전에 따른 급격한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었지만, 정부의 정책은 과거 방식의 토목과 건설에 의존했다. 일부 대기업 부문을 제외하고는 경제 전반에 걸쳐 쇠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IV. 한국경제의 대안
선진국이 현재의 경제적,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하는데는 수백년이 걸렸다. 민주적인 정치와 경제의 장치들이 적절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사회적 자본이 축적되어야 한다. 특히 6월 항쟁과 같은 명예혁명의 결과 기득권 세력이 전면적으로 해체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적 장치가 자동적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금권정치와 재벌과 관료의 연합을 해체하고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서구에서의 민주화는 혁명이나 아니면 인근 국가의 혁명에 의해 기득권 세력에 대한 외부적 압력이 있을 때 가능했다. 볼쉐비키 혁명과 대공황의 충격으로 인해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경제민주화를 위한 개혁정책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렇듯 기득권층이 느끼는 체제적 위험으로 인해 노동자와 소비자의 권리를 인정하며 공정한 경쟁을 규율하는 시장을 정립하는데 대한 기득권 층의 반발을 억제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급속히 커지는 자본가의 영향력을 통제하기 위한 진보시대(Progressive Era, 1890-1910)의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시 상원의원의 직접 선거(1913)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금권정치를 타파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시대의 노력이 유산으로 남아 대공황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라는 혁명적 정치인의 장기집권에 의해 노동자와 소비자를 세력화하고 이들이 공정하게 거대기업과 거래할 수 있도록 제반 제도를 도입하면서 경제 민주화의 초석이 만들어졌다. 그러한 미국에서도 여전히 금권정치 논란이 계속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금권정치는 항상 경계하고 통제해야 할 목표이다. 한국경제는 현재 경제적 민주화를 달성하지 못한 채 세계화로 인한 경쟁에 직면한 상황이다. 막대한 내부유보자금을 축적한 재벌에 의한 금권정치를 청산하지 못했고, 재벌과 관료의 연합에 따른 친기업 정책, 건설족에 휘둘려 끊임없이 토목과 건설 경기 부양에만 집중하는 경제정책은 경제체질을 약화시키고 있다. 친기업정책은 재벌의 시장지배력을 강화시켜 중소기업과 노동자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있으며, 끊임없이 거품을 일으켜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건설경기 부양 정책은 부동산 거품을 조장하여 서민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몰아넣고, 금융부문을 부실화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경제는 새로운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1. 사회통합을 기반으로 한 경쟁력 강화 전략
세계화시대 각국은 넓은 계층을 포괄하는 성장(Broad-based Growth) 또는 함께 하는 번영(Shared Prosperity)을 목표로 삼고 있다. 유럽에서는 더 많고 더 나은 일자리와 사회통합(with more and better jobs and greater social cohesion)을 강조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고 역동적인 지식기반 경제(to become the most competitive and dynamic knowledge-based economy in the world)을 지향하는 리스본 전략(Lisbon Strategy)을 제시한 바 있다. 미국의 해밀턴 전략 역시 명시적으로 넓은 계층을 포괄하는 성장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믿는다고 밝히고 있다. (The Hamilton Project‘s economic strategy reflects a judgment that long-term prosperity is best achieved by making economic growth broad-based, by enhancing individual economic security, and by embracing a role for effective government in making needed public investments.) 불균형성장전략의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경제는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불균형 성장전략의 수혜자인 수출대기업의 영향력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때문이다. 이를 위해 수출이나 기업 위주의 국가 정책목표를 일자리로 바꿔야 한다. 국가의 목표는 세계화 시대를 대처할 수 있도록 고급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성장의 과실이 가급적 많은 국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2. 노동자와 소비자의 세력화및 보호장치 강화
경제적 민주화의 기본원칙도 정치적 민주화와 마찬가지로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에 있다. 각각의 경제주체가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규칙을 제정하고 준수하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유럽이나 1930년대 미국에서 처럼 노동자의 조직을 강화하여 세력화하던지 아니면 현대 미국처럼 개별 노동자나 소비자가 거대 경제권력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보호장치를 강화하는 방안이 있다. OECD 최저수준의 노동조합 가입률과 노동자, 소비자를 보호하는 법률 장치의 미비는 민주적 시장경제의 운영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열악한 환경이므로 양 방향에서 진전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치를 법률적 규제로만 마련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정부가 지원을 해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
3. 보편적 복지를 통한 사회통합 강화
민주화는 인권을 보호하고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경제 민주화는 경제적 권리의 의미를 확대하고 이를 보장하는 발전을 의미한다. 의료보험, 연금, 고용보험 등 기본적인 복지를 뛰어 넘어, 소득과 관련없이 마음놓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권리, 누구나 교육 받을 수 있는 권리, 일할 수 있는 권리까지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 국가의 이러한 기능을 통해 세계화 시대에 경쟁력을 갖춘 인적 자본을 육성할 수 있으며, 이것이 사회통합을 강화하여 경제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 국가가 개인의 경제활동을 보장함에 따라 경제의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을 줄일 수 있고 이것이 결국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4. 재벌 개혁과 관료 개혁
장기적으로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세계화로 인한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개인과 기업의 창의력과 기업가정신을 최대한 고양할 수 있도록 공정한 규칙이 적용되는 시장이 되어야 한다. 기업의 성장이 시장지배력이 아니라 창의력에 의해 결정될 때 기업가정신은 발휘된다. 재벌개혁과 관료개혁을 통해 미래를 위한 새로운 경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토론: 정태인(한국사회과학연구소)
역사상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달성한 사례가 있다. 북유럽 4국이다. 이들은 개방과 자유화에 따른 위기를 겪었지만 이겨냈다. 이들의 특징은 중도좌파 정당이 정치연합을 주도하면서 복지정책 기조가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이 사회적 합의와 보편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선 노조 조직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사회적 경제를 형성해 사회자본을 축적해야 한다. 재벌들도 사회서비스와 교육을 중심으로 한 보편복지와 중앙임금교섭이 장기적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생산성 향상 프로젝트를 시행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의 보수 양당 체제의 특성상 사회적 합의와 보편복지, 합의제 정치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비례대표의 획기적 확대와 정치연합 형성을 통한 장기 전략의 마련과 정책 일관성의 확보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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