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개혁

진보개혁 > 개발 5적과 동거 무엇을 했었나?

토건종식3 2006. 11. 27. 01:05
[진보개혁의 위기] ‘개발 5적’ 집값 거품 먹고 산다

 

 
[경향신문 2006-11-26 21:18]    
 
 

호주의 동북아 전문가 개번 매코맥은 1996년 현대 일본을 ‘토건국가’로 정의했다. 경제성장 명목으로 대형 건설사업을 하고, 여기서 생기는 눈먼 돈을 관료, 지방토호, 토건업체들이 나눠먹으며 개발에 필요한 여론을 조성하고 자본을 동원하는 구조를 말한다. 최근 이 개념이 한국에도 적용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에 대해 일본을 능가하는 토건국가로 간주한다. 참여정부 역시 신도시 건설, 혁신도시, 기업도시, 행정도시, 경제자유구역 등 박정희식 개발에 못지않은 건축·토목 공사를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그 근거이다. 군사정권의 개발이 국가 주도였다면, 민주정부들의 개발은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신개발주의라는 분석도 있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 운동본부장도 저서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이다?’에서 부동산 문제는 ‘개발 5적’이 이끄는 토건국가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토건국가에서는 집값 하락을 원하지 않는 강한 기득권 구조가 있는데 ‘개발 5적’이란 것이다. 

 

 

“집값이 폭등해 국민들이 아우성을 쳐도 건설업체의 폭리구조가 바뀌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국민보다는 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재정경제부와 건설교통부의 관료, 건설업계의 검은 돈을 챙기고 지역개발 사업에 개입하는 정치인, 독자의 알 권리보다는 부동산 광고매출에 의존하는 언론, 정부와 업계로부터 각종 용역을 받는 연구집단이 단단한 이익구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실제 정부는 집값 상승이 공급 부족 때문이라면서 수천만평의 땅을 아파트 공사장으로 바꾼다. 건설업계 연구기관과 많은 대학 교수들은 집값에 거품이 끼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강남 수요를 만족시킬 만한 고급 주거단지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언론은 이를 받아 정부 규제가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면서 투기수요를 잡기 위한 세제 및 규제의 완화를 요구한다. 정치권은 이를 근거로 정책 방향을 바꾸라고 정부를 압박한다. 

 

 

청와대도 상당 부분 이런 개발동맹이 집값을 부추긴다는 점을 인정한다. ‘청와대 브리핑’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일부 건설업체·금융기관·부동산중개업자·부동산 언론 등 정부정책에 대항하는 ‘세력’ 때문이라고 강조한 것이 좋은 예이다. 다만 정부 자신이 가장 핵심적인 ‘부동산 세력’이란 점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실 관료와 기업간의 유착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건설 관련 협회의 한 간부는 “아무리 ‘낙하산 시비’가 붙어도 대부분 관료들이 퇴직 이후 협회나 산하 기관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관료조직의 숨통을 열어두려는 정부, 이들의 인맥과 영향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업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건교부의 경우 최재덕 전 차관은 건설협회 산하 건설산업연구원장이 됐고, 최종수 전 부산지방국도관리청장은 건설협회 부회장, 김일중 전 차관보는 전문건설협회 이사장, 박성표 기획관리실장은 주택보증 사장이 됐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공급 확대책을 내세운 정부의 11·15대책은 건설업체의 논리를 대변하는 건설산업연구원이 한달전에 펴낸 ‘민간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의 타당성 검토 및 분양가 인하를 위한 정책대안’이란 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면서 “정책이 민간의 이익에 따라 입안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박재현기자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2003년 11월 하순 어느 날 오후. 도요타자동차의 회장인 오쿠다 히로시 일본 게이단렌 회장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집무실을 찾았다. 그는 대뜸 “며칠 전 총리께서 재가하신 도로공단 총재 인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됐다”고 따지고 들었다.

 

오쿠다 회장에 대한 국민적 신망이 두텁다고는 해도 재계 대표가 공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인사를 놓고 국정을 맡은 최고지도자 앞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월권에 해당하는 일. 더욱이 고이즈미 총리는 ‘대통령형 총리’로 불릴 정도로 남에게 굽히기를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게이단렌 실무자들은 ‘고성이 오가지나 않을까’ 마음을 바짝 졸였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다. 회장께서 마음을 풀어라”며 달랬다. 면담을 마친 오쿠다 회장은 “싸운 것이 아니라 경제계의 여론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라며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그로부터 반년 전에도 오쿠다 회장의 소신 발언은 일본 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우선 장관들의 사표부터 받겠다. 그런 다음 장관은 차관의 사표를 받고, 차관은 국장들의 사표를 받으라고 하겠다.”

 

지난해 3월 일본 정부가 유권자들과의 대화 기회를 늘릴 목적으로 마련한 공개 타운미팅. ‘당신이 총리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오쿠다 회장은 “기업에서는 사장이 시키는 일을 부사장이 하지 않으면 사람을 갈아치운다”며 사표론을 끄집어냈다. 고이즈미 총리가 내세운 개혁공약이 자민당 내부의 저항세력은 물론 정치인 출신 각료들의 벽에 부딪히면서 진척이 없는 현실을 꼬집은 발언이었다. 이 자리에는 자민당 중진인 히라누마 다케오 당시 경제산업상도 참석한 상태. 히라누마 경제산업상은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예를 갖췄다.

 

오쿠다 회장은 후생노동성이 근로자 정년연장을 추진하자 담당 장관과 논전을 벌인 끝에 보류시키기도 했다.

  

 

 ***‘금권정치 탈피’ 몸부림 *** 

 

일본 사회에는 아직도 ‘관존민비’, 또는 ‘사농공상’의 전통이 남아 있다. 이런 전근대적 사고방식은 정관계와 재계의 관계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한다. 일본 경제가 흥청댔던 70년대와 80년대만큼은 아니지만 은행이나 공기업 간부가 감독관청의 관리나 유력 정치인에게 접대하는 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정업계의 이익을 공공연히 대변하는 이른바 ‘족(族)의원’이 버젓이 행세하는 것도 정치권-관료-업계를 잇는 강력한 유착관계가 빚어낸 일본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예컨대 정부가 발주하는 공공공사 물량이 줄어든다 싶으면 건설업계는 해당 상임위 소속의 건설족 의원에게 로비해 예산집행 규모가 늘어나도록 한다. 도로공단 민영화에 가장 반대하는 의원은 공단측으로부터 갖가지 편의를 제공받아 온 ‘도로족’ 의원이고, 우편공단 민영화 얘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우편족’들이 들고 일어선다.

 

각 파벌이 정기적으로 파티를 열어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것도 일본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유력 파벌이 개최하는 파티 초대장을 받으면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은 장당 1만엔씩하는 파티권을 마지못해 단체로 구입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과거처럼 음성적으로 정치자금을 주고받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생겨난 현상이라는 점을 들어 일본 정치가 깨끗해지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금권정치로 악명이 높던 일본이지만 요즘은 정치자금 부정에 관한 한 액수를 불문하고 엄격히 따진다. 지난해 11월 중의원 총선거가 끝난 뒤 한동안 일본 정가에는 ‘연좌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연좌제란 후보자와 일정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으면 법원이 해당 후보자의 당선을 취소토록 한 제도. 본인이 위법행위에 관여하지 않았어도,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항변해도 소용없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의원 2명은 이들을 지지하는 노조 간부들이 통신회사에 의뢰해 불법 전화 선거운동을 벌인 사실이 적발돼 기소됐다. 수도권 사이타마현에서 당선된 자민당 의원도 중앙당에서 받은 돈 중 일부가 운동원 동원에 쓰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어찌 보면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흔히 생겨날 만한 일로 여겨지지만 일본 사회는 성토 일색이었다. <아사히신문>은 “국민의 세금인 정당교부금을 불법운동에 쓴 것은 죄질이 나쁘다”며 “21세기에도 이런 범죄가 남아 있다니”라며 개탄했다.

 

*** ‘그래도 2류는 된다’*** 일본 경제의 회복을 고이즈미 총리의 뚝심과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9월 개각을 앞두고 자민당의 실력자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와 아오키 미키오 참의원 간사장 등은 다케나카 헤이조 경제재정ㆍ금융상의 교체를 요구했다. 표면적으로는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실제로는 금융개혁에 반발하는 세력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

 

게이오대 교수 출신인 그는 부실채권 처리 등 금융개혁은 물론 우정사업 및 도로공단 민영화 등의 개혁 밑그림을 그린 인물. 고이즈미 총리는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다케나카 경제재정ㆍ금융상을 유임시켰다. 다른 것은 양보하더라도 구조개혁의 상징인 그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개각 후 고이즈미 정권의 지지율은 11%포인트 상승했다. 국민여론을 확인한 자민당 내 저항세력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일본 언론은 세계경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정치분야는 뒤떨어져 있다고 개탄한다. 하지만 적어도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는 점에서 2류는 된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오쿠다 회장의 사례에서 확인된 것처럼 재계가 설령 고언을 해도 일본 정치권은 진지하게 경청한다. 한 경제평론가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의 폐허에서 일본을 부자나라로 이끈 주역이 기업이라는 점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조개혁 입법을 놓고 자민당 내의 힘겨루기가 치열하고, 여야간에도 입씨름이 벌어지지만 의회 내 갈등으로 기업활동이 차질을 빚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공기업 민영화는 본궤도에 올랐고 경제특구 설치, 금융부실 해소, 재정개혁 등 다른 분야의 정책들도 예정대로 진행 중이다.

 

우익 성격이라는 점이 한국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당적을 초월한 초당파 의원 모임이 많다는 것도 일본 정계의 강점으로 꼽힌다. ‘러ㆍ일전쟁에서 배우는 모임’ ‘북방 영토를 생각하는 모임’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모임’ 등은 주요 현안에 대해 정치권의 뜻을 모아 여론을 주도한다.

 

<아사히신문> 정치부의 마키노 요시히로기자는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절충과 타협의 관행에 익숙해선지 지나고 보면 경제에 해가 되는 정책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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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재·동아일보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진보개혁의 위기] 4-2. 진보의 10대 의제 : 부동산
 
[경향신문 2006-11-26 21:18]    
 
 
지난 8월 판교신도시 2차 청약접수장소인 성남시 탄천종합운동장 신청접수처가 몰려든 청약신청자들로 붐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국내 유명 건설회사에 10년 이상을 함께 근무했던 박모씨(52)와 김모씨(49). 두 사람은 집 하나 때문에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1992년 결혼한 김씨는 93년 서울 도곡동에 25평 아파트를 장만했다. 이후 아이가 생겨 좀더 큰 집으로 이사가기 위해 95년 수서동에 32평 아파트를 1억7천만원에 분양받았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분양받은 집은 시세가 1억2천만원까지 떨어졌다. 도곡동 아파트를 담보로 맡겨 빌린 돈은 금리가 살인적으로 올랐다. 월급의 거의 대부분을 이자 갚는 데 써야 했다. 빚에 신물이 난 김씨는 2000년 두 집을 다 팔고 빚을 갚았다. 그리고 서초동 삼풍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갔다. 전세를 살았지만, 빚을 다 갚았다는 홀가분함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다음해 그는 구조조정을 당했다. 40대 초반의 나이. 재취업은 어려웠다. 학원강사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경기 군포시 산본의 5천만원 전셋집으로 옮겼다. 이후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집을 살까 고민을 했다. 그러나 빚을 내 집을 샀다가 당한 고통이 떠올랐다. 그리고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를 믿기로 하고, 집을 사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집값을 잡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그는 광화문으로 달려갔다. 촛불시위에 동참했다.

 

“만약 그때 집을 샀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15억원대의 자산가가 되어 있을 겁니다. 그 때 집값이 너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렇게 오르다 또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겁도 났고요. 그래서인지 정부를 너무 믿었어요. 그러나 집 한 칸 장만하지 못한 내가 바보지, 누굴 원망하겠어요.” 

 

 

반면 박씨는 다르다. 그는 대치동 주공아파트 18평을 94년에 구입했다. 그런데 이 아파트가 재건축으로 대치 동부센트레빌로 탈바꿈했다. 박씨는 건설회사 현장소장이라는 이유 때문에 재건축조합장이 됐다. 재건축을 하면서 집값도 오르고 조합장이라며 활동비도 생기자 그는 2001년 사표를 던지고 공인중개사 공부를 했다. 2002년 압구정동에 중개업소를 차린 박씨는 재건축 공사 때문에 이사간 청실아파트 35평형이 투자가치가 있다고 보고 이를 4억원에 샀다. 또 중개업소 근처에 있는 한양아파트 39평형도 7억원을 주고 구입했다. 집을 사는 데 자기 돈은 거의 필요없었다. 집을 담보로 내세우면 은행에서 돈빌리기는 너무 쉬웠다. 현재 그가 사놓은 아파트 가격만 동부센트레빌 32억원, 청실아파트 12억원, 한양아파트 15억원으로 60억원에 가깝다.

 

‘정부 덕’에 부자가 된 박씨는 정부에 고마워 할까. 그는 김씨만큼 정부에 불만이 많다. “이 정부는 강남 사람들을 적으로 봐요. 세금 꼬박꼬박 내고 사는데 모두 투기꾼으로 몰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뭐 집값 올리라고 부채질했나요.” 

 

 

결혼 6년차로 맞벌이를 하고 있는 정금희씨(36·경기 부천)는 초등학교 교사이다. 연구원인 남편의 수입과 합치면 연봉이 7천만원에 이르는 중산층이다. 재작년 급한 마음에 과천 재건축 아파트를 사놓았지만 이자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해 집을 팔았다. 그런데 과천 집값은 최근 한달 새 1억원이나 올랐다.

 

 

중앙대 신광영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서울을 5개 권역으로 나눴을 때 강남지역(강남, 서초, 송파, 강동구)의 가구당 소득(월 2백98만원)은 평균(월 2백85만원)보다 크게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강남지역의 가구당 부동산 재산 규모는 3억1천4백12만원으로 타지역보다 70%까지 많았다. 신교수는 “2002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표본자료로 분석했기 때문에 현재는 그 차이가 훨씬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 성남시 중원구에 사는 최현진씨(37). 그는 판교에 모든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분양가가 올라가고 분양 일정이 늦춰졌다. 그 사이 자신이 사는 성남뿐 아니라 직장이 있는 분당, 인근 용인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아내는 판교 경쟁률이 높을 테니 판교 청약 대신 조그만 집이라도 사놔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 판교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겠다고 성남, 용인, 광주, 하남 등을 임신한 아내와 함께 돌아다녔다. “집값이 뛴다기에 조그만 아파트라도 마련하려고 돌아다녀봤지만 내 소득으로는 강북의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도 살 수 없었어요. 그동안 한눈팔지 않고 회사일만 열심히 한 결과가 이렇게 세입자 신세입니다.”

 

중소기업에서 직장생활 13년차인 허승범씨(38·서울 염창동). “월급 2백50만원 중 1백50만원을 저축해요. 그 중 2004년부터 2년 동안 월 불입액 25만원씩 넣은 적금통장이 만기가 됐다기에 은행에 갔더니 손에 쥔 돈은 5백25만원 정도였죠. 차라리 이 돈을 저금하지 않고 2년전 용인에 집을 산 친구처럼 은행돈을 굴려 집을 샀다면 최소한 5천만원을 벌었을 거에요. 열심히 아끼고 저축해도 집 한 칸 장만하지 못하는 세상이 정상입니까.” 허씨는 세상으로부터 배신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도 전략을 바꾸었다. 저금을 모두 해약하고 은행 융자금을 더해 집을 장만할 생각이다.

 

 

대한주택공사 산하 주택도시연구원 지규현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근로자가구의 월 평균소득(3백22만원)을 기준으로 대출받아 구입할 수 있는 적정 주택구입 가격은 3억3천6백61만원이다. 시세의 60~80%에 불과한 정부의 공시가격으로도 6억원이 넘는 강남의 30평형대 아파트를 사려면 월 7백만원 정도를 벌어야 가능하다. 시세대로 집을 사려면 월소득이 1천만원이라도 부족할 판이다. 이 때문에 ‘로또 당첨’이나 부모에게서 받은 재산이 없는 한 ‘자수성가’는 불가능하다. 부동산뱅크가 지난해 월평균 소득과 금리, 아파트값 등을 기초로 분석한 결과, 서울에서 대출을 받지 않고 32평형을 마련하는 데 27년5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서울 강남구 개포우성 2차 45평형은 올초 17억원에서 11월 초 현재 27억원을 넘었다. 목동 5단지 35평형은 같은 기간 7억9천만원에서 13억2천만원으로 올랐다. 그동안 집값 상승이 이뤄지지 않던 강북과 수도권 외곽도 마찬가지다. 노원구 중계동 청구3차 32평형은 올초 3억6천만원에서 11월 4억7천만원으로, 구리시 교문동 토평동양 45평형은 4억5천만원에서 7억2천만원으로 올랐다. 또 상위 5%가 토지의 82%를 소유하고 있다. 이것이 “하늘이 두쪽 나도 집값만은 잡겠다”는 참여정부의 성적표이다. 

 

 

이렇게 열심히 해도 서민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삶의 질 개선 운운하던 진보·개혁 세력들은 이 지경이 되도록 어디서 무엇을 한 것일까.

 

판교신도시 임대주택에 당첨된 한 시민이 너무 높은 임대료에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부동산 자본이 기득권 세력에 의해 독점되고 총자본이 건설과 토지에 집중되고 있지만 오히려 신도시 용적률 상향조정 등 퇴보적 개발방식으로 부동산의 소유 독점을 심화시키고 있어요. 그러나 보수세력은 ‘공급을 늘리자, 신도시를 건설하자’ 하면서 이를 시장의 논리로 둔갑시키고 있습니다. 반면 진보세력은 부동산이나 토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심각성을 모르고 제대로 된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김용창 세종사이버대 교수)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여전히 부동산 문제에 대해 갈팡질팡이다. 총선공약인 원가공개를 실현시키지 못했다. 5·31 지방선거 패배 이후 종합부동산세 완화로 비난을 받고도 최근에 또다시 종부세 기준을 9억원 이상으로 상향조정한다고 하다가 취소하는 등 우왕좌왕이다.

 

유일한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온 나라가 부동산 문제로 들썩거릴 때도 “투기 무관심당”이란 혹평을 받았다. 민노당이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 한 것은 거의 없다. 있다면 지난해 8·31대책을 전후로 ‘부동산문제 TF’를 임시 운영한 것이 전부이다. 현재 부동산 문제를 전담하는 기구도 없다. 당의 경제민주화본부가 내는 논평이 부동산 활동의 대부분이다. 그 내용이라는 것도 1년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관심과 연구가 부족했다는 얘기다. 원가공개를 내세우고 있지만, 입법화하는 활동은 찾기 어렵다.

 

 

민주노총 대변인 출신인 손낙구 심상정의원 보좌관의 말이다. “집값이 오르면 얼마나 열불납니까. 그런데 명색이 서민정당인 민노당이 당지도부부터 당원까지 관심은 딴 데 있어요.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는 그냥 멍한 상태죠. ‘무관심당’이 아니라 ‘무심당’이에요. 전대협·한총련 출신 그룹은 통일운동, 민주노총 출신 그룹은 기업별 노사활동에 주력하지 부동산은 관심 밖입니다. 한국의 진보는 아직도 추억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경실련의 활동이 눈에 띈다. 경실련은 2004년부터 ‘다시 경제정의를 세우자’는 목표로 부동산 문제에 집중했다. 최근에는 10만 서포터즈 운동을 통해, 직접 거리로 나서는 등 부동산 대란 와중에서 이슈를 생산하며 정부를 끊임없이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후분양제나 전면적인 원가공개, 신도시내 완전 임대주택 공급 등의 대안은 아직 완전한 공감대를 얻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최대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부동산분야 활동은 ‘백화점식 운동의 구색 맞추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참여연대 안에는 부동산 문제를 전담하는 기구도 없다. ‘분양가 TFT’란 회의체를 통해 원가공개와 철저한 검증 등의 대안을 제시했지만 ‘재벌개혁’만큼 이슈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경실련과의 경쟁을 의식, 경실련의 제안에 물타기를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4년 분양원가 공개요구가 뜨겁자 정부는 학계와 업계,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주택공급제도검토위원회를 만들어 이를 논의한 바 있다. 여기에 참여연대도 참여했는데, 이 위원회는 분양원가 공개가 사회적 혼란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며 분양가상한제 적용에 손을 들어줬다. 참여연대는 지금 원가공개를 주장하고 있다.

 

 

토지정의시민연대가 뒤늦게 조직됐지만 경실련이나 참여연대의 그늘에 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토지보유세 강화란 명제에만 집중, 활동영역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주노총은 조합원의 근로조건이 조금만 위협받아도 파업을 운운하지만 정작 집값 상승으로 노동자의 삶이 나락에 빠져드는데도 그 흔한 성명 하나 낸 적이 없다. “몇 번 민주노총 고위 간부들을 만나 부동산 문제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다들 ‘너무 어렵다’는 표정만 짓더군요. 정말 어려워서 침묵하는 건지, 보수언론이 말하듯 가난한 노동자들의 실상을 모르고 이념적 구호만 외치는 ‘귀족노동자’여서 입을 닫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김헌동 본부장)

 

고영근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부장은 “민중연대 등 소위 진보단체에서는 자유무역협정(FTA), 재벌 문제 등 정치적 이슈에 매달리고 있다”면서 “그러나 부동산 문제에 대한 외면은 그들이 대변해야 할 사람들의 삶을 외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진보·개혁 세력은 박정희식 개발에서 정치적인 대안만을 강구하면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고 봤다”면서 “그러나 자본주의의 힘은 몰랐다”고 지적했다.

 

 

〈박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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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신도시가 들어설 예정인 경기 성남 분당구 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