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척결

어느 토건 하청업자의 부패와 로비 고백

토건종식3 2011. 1. 2. 14:15

“1000억대 공사, 0.07점 차 입찰 갈리니 죽기살기로 로비”      [중앙일보] 입력 2010.10.13 

[탐사 기획] 어느 건설사 하청업자의 로비 고백
건설업계 ‘로비의 진화’

1000억원대 공사 입찰 심사가 100점 만점에 소수점 이하인 0.07점 차이로 결정되니 교수·연구원 등 심사위원을 죽기살기로 로비해 승부를 걸 수밖에 없습니다.”

30년 넘게 대기업 하청업체를 운영한 하윤성(가명·53·뒷모습) 사장이 본지 남형석 기자와 만나 깊숙한 건설업계의 부조리를 털어놨다. 하씨는 대기업 A사의 이사 명함을 들고 다니면서 공사수주 및 각종 인허가와 관련한 로비스트로 일해 왔다고 고백했다. [박지혜 인턴기자]
30년 넘게 중소건설업체를 운영한 하윤성(가명·53) 사장은 로비가 반복되는 핵심적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내 대형건설업체들은 겉으로는 더 이상 로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그들이 쥐락펴락할 수 있는 하청업체를 앞세워 대신 로비를 시킨다는 게 하 사장의 주장이다. 건설업계의 비리가 겉으로는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더 지능적으로, 더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하청업체 사장들도 이를 뿌리칠 수 없다는 게 하 사장의 귀띔이다. 자신이 로비를 대신한 대기업이 공사를 따야 일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의 공사 입찰이 로비 없이는 일감을 딸 수 없는 구조라는 게 문제다. 입찰 심사를 어떻게 하기에 로비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일까. 본지 탐사기획팀은 최근 완공된 정부 발주 댐 공사의 심사 집계표를 단독 입수해 분석했다.

‘0.07점’.

본지가 단독 입수한 심의채점표. 얼마 전 준공된 한 댐 공사의 입찰 당시 설계 심사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A사와 B사의 점수 차이가 100점 만점에 0.07점밖에 나지 않는다. 1750억원 규모의 공사가 소수점으로 결정된 셈이다.
최근 준공된 한 댐 공사의 입찰 당시 대기업 A사와 B사의 심사 점수 차이다. 당시 A사는 91.49점을 받아 91.42점을 받은 B사를 제치고 공사를 따냈다. 공사에 든 총비용은 약 1750억원. 1000억원대 공사의 주인이 단 0.07점 차이로 결정된 셈이다. 2007년에 준공된 230억원 규모인 전남 서부권 광역상수도 정수장 공사도 0.45점 차로 시공업체가 결정됐다. 2003년 시공에 들어간 시화 멀티테크노밸리 제5공구의 경우 설계 심의 1등과 2등의 차이가 1.70점이었다.

공사비 수천억원에 이르는 상당수의 공사가 심사 점수 소수점 차이로 업체를 선정하는 탓에 업체 간 생사를 건 로비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설계와 시공을 한 업체에 맡기는 턴키 방식에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도 많다. 우선 설계 심의에 드는 비용이 수십억원대에 이르다 보니 심의에 참가할 수 있는 업체는 대형건설사 몇 개뿐이다. 턴키 제도 에서는 설계 비용과 수천 명의 심의위원 후보를 관리할 자금이 부족한 중견건설업체들은 공사를 따낼 가능성이 거의 ‘제로(0)’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로비가 과열될 수밖에 없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설계에 들어간 수십억원의 비용을 날리지 않기 위해 대형건설사들은 설계 심의를 맡는 교수·연구원들에게 치열한 로비를 한다. 이 과정에서 직접 나서기가 부담스럽자 하청업체를 앞장세운다는 것이다. 김헌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감시단장은 “로비로 설계 심사를 통과한 대기업들은 업체끼리 가격 담합을 한다”며 “한마디로 설계 부문의 로비와 가격 부문의 업체 간 담합이 차례로 이뤄지는 ‘이중 비리구조’인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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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심의가 반나절 만에 이뤄지는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설계 심의는 수천 명의 심의위원 후보 중 몇 명에게 심의 당일 새벽에 통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비리를 사전 차단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지만 단 몇 시간 만에 수백억~수천억원짜리 공사의 주인이 결정된다는 얘기다. 이복남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심의위원들도 짧은 시간 내 설계 심의를 다 마쳐야 하니 꼼꼼한 점검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대신 평소에 자신을 잘 접대한 건설사들이 생각나는 건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문제점을 알고 있는 정부도 궁여지책을 쓰고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입찰 비리를 막기 위해 민간 심사위원 3000여 명의 재산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본지 8월 12일자 1면). 법률이 개정되면 교수·연구원 등 민간 위원들은 임기 2년 동안 재정부에 재산 등록을 해야 한다.

 

“LH, 평가서 심사순위 비워둔 채 사인 하라고 해”

[중앙일보] 입력 2010.10.13 01:36 / 수정 2010.10.13 07:01

기술평가 맡은 이용석 교수

지난해 8월 금호건설 로비를 고발했던 연세대 이용석(전기전자공학과·60·사진) 교수는 여전히 바뀌지 않는 비리 관행을 지적했다. 최근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임대주택 사전예약 및 국민임대 인터넷 청약 개발 기술평가’에 평가위원으로 참여했다가 또다시 ‘로비 냄새를 맡았다’고 그는 폭로했다.

이 교수는 “기술평가분야를 내가 맡았는데, LH 측에서 후보 업체들의 평가점수를 무조건 만점의 85% 이상 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쪽에서는 ‘한 업체에 몰아주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하더군요. 보나마나 기술력이 부족한 업체가 사전에 기술평가를 맡은 직원에게 로비한 겁니다. 기술심의에서만 비슷한 점수를 받으면 가격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거죠”라고 말했다.

게다가 LH 측은 심사 순위가 공란 상태인 평가결과 확인서를 가져와 서명해 달라고 이 교수에게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끝까지 1, 2위 업체 순위를 기록한 뒤 서명하겠다고 버텼다. “심의가 끝난 뒤 바로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했더니 감사원에서 LH 감사실로 조사하라는 통보를 했습니다.”

LH 자체 감사 결과 심의과정에 감사실 직원이 배석해야 하고, 녹화도 해야 하는 등의 규정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LH 감사실은 이 교수에게 “앞으로 심의 평가 때 규정을 철저히 지키겠다”고 알려왔다.

이 교수는 지난해 경기도 파주 교하신도시 복합커뮤니티센터 입찰 심의위원 당시 입찰에 참가했던 금호건설이 자신에게 10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건넨 사실을 폭로했다. 그 공로로 올 초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국민훈장 목련장까지 받았다.공공 공사 입찰 심의위원 후보군에 포함된 이후 이 교수는 건설사 직원들의 ‘관리대상’이 됐다. 이 교수는 건설사 직원들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일부 저장해 놓았다. 평소에는 식사 등을 대접하며 ‘뭐 필요한 것 없으십니까’ ‘골프채 좋은 거 있으십니까’ 등을 묻다가 심의위원 선정 당일이 되면 ‘선정 결과를 알려주시면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와 같은 절실한 문자를 보내는 식이다.

그는 건설 비리 고발과 처벌 강화를 위해 남은 5년의 교수 정년을 쏟아 부을 것이라고 밝혔다. “쉽게 돈 버는 방법을 버리고 고발에만 신경 쓰니 사람들이 저를 ‘기인’이라고 합니다. 제가 기인이 아니라 이 바닥이 이상한 것은 아닐까요?”

 

 

 공사비 두 배 부풀리기 … 10년 전 단종된 굴착기에 비밀 있다

 

어느 건설사 하청업자의 로비 고백 - 건설비리 조장하는 ‘표준품셈’
20년 경력 덤프트럭 기사 동행취재 충청북도 진천군 혁신도시 건설현장. 지난주말 어스름한 새벽부터 15대의 덤프트럭이 줄을 서서 상차(흙과 모래를 차에 싣는 일)를 기다리고 있었다. 덤프트럭 운전만 20년째인 이형길(42·가명)씨의 일당은 50여만원 . 점심시간 빼고 10시간을 일하니 시간당 5만원을 버는 셈이다. 언뜻 보면 꽤 짭짤해 보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이씨의 덤프트럭은 이날 341㎞를 달리며 135L의 기름을 썼다. 이 날짜 경유시세가 1520원이니 기름값만 20만5000원이 들었다. 매달 차 할부금으로 180여 만원, 차량보험료로 월 35만원(연 420만원)이 들어간다. 게다가 1년에 두 번 교체하는 타이어 비용(총 1600만원)과 각종 수리비까지 계산하면 그가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충북 진천군 혁신도시 건설현장에서 덤프트럭 운전자 이형길(42·가명)씨가 흙을 싣는 동안 대기하고 있다.
이씨는 “일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눈비가 오면 일을 못 한다”며 “월수입 300만원이 넘을 때도 있지만 수입이 지출보다 적은 달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공사의 발주자인 진천군청이 제시한 표준품셈에는 ‘15t 덤프의 시간당 단가는 6만4170원’이라고 돼 있었다. 이씨가 운전하는 25t 덤프 단가는 품셈표에 나와 있지 않지만, 같은 비율로 환산하면 한 시간에 약 10만2000원꼴이다. 이씨가 실제 받는 금액 과 무려 5만2000원이나 차이가 난다. 이씨는 표준품셈을 근거로 하청업체에 찾아가 항변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대기업 하청을 받는 이 건설업체는 오히려 이씨에게 하소연을 했다 . 이씨는 “하청업체가 내민 계약서를 보니 설계 단가의 채 반도 안 되는 가격에 계약을 했더라”며 “결국 대형 건설사들이 표준품셈에 근거한 일당으로 공사를 수주한 뒤 실제 근로자에게는 절반만 주는 셈 아니냐”고 말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품셈제도=시장단가보다 비싼 표준품셈은 ‘공사비 부풀리기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표준품셈에 따르면 덤프트럭은 4차로 이상의 포장도로를 적재 상태에서 시속 30㎞로 주행하게 돼 있다. 적재량은 15톤 기준 5~8㎥다. 그러나 덤프연대 측은 “평균적으로 덤프는 4차선 도로를 40~60㎞로 달리고 적재량은 10~12㎥ 정도”라고 말했다. 결국 표준품셈은 실제 현장 가격보다 두 배 이상 비싼 셈이다. 표준품셈은 새로운 기계나 공법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유연하지 못하다. 표준품셈은 굴착기 단가를 산출할 때 대부분 한 번에 0.7㎥의 흙을 퍼 올리는 ‘0.7㎥ 버켓(대우07굴착기)’을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한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는 “대우07굴착기는 현장에서 없어진 지 10년이 넘었고, 최근에는 대부분 1~2㎥ 버켓을 사용한다”고 했다. 같은 시간에 두 배 이상의 일을 하는 기계가 있는데도 구형을 기준으로 단가를 산출해 공사비가 부풀려지는 셈이다.



◆수주액의 절반만 받는 하청업체들=턴키나 대안입찰 방식의 경우 대형건설사는 정부가 제시한 설계금액의 평균 93% 에 공사를 따낸다. 표준품셈에 근거해 시장가격보다 많이 부풀려진 정부 설계가격을 거의 다 받는다는 얘기다. 반면 하청을 줄 때는 철저히 시장가격에 따른 최저가 방식으로 계산한다. 전체 공사비의 절반 정도만 하청업체 몫인 셈이다.

신영철 건설경제연구소 소장은 “부풀려진 표준품셈에 의해 세금의 상당 부분이 대형 건설업체에 돌아가고 하청업체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건설 현장은 개선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며 “표준품셈을 없애고 과거 비슷한 공사의 계약금액을 바탕으로 한 시장단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강태경 실장은 “표준품셈을 무조건 폐지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며 “2006년 이후 매년 현실에 맞게 개정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2006년 국토해양부(당시 건설교통부)는 품셈기준을 한차례 대폭 개편했다. 강 실장은 “표준품셈이 국가가 획일적으로 정한 기준으로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각기 다른 여건에 맞춰 적용하고 있어 과거에 지적됐던 문제들은 많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표준품셈=정부·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사의 공사비를 산출하는 정부고시가격.


외국에선 어떻게 하나

표준품셈을 처음 사용한 일본에서는 1993년 ‘실적공사비 적산제도’가 전면 도입됐다. 실적공사비 적산제도란 정부의 표준화된 규정에 의해 일일이 가격을 매기는 대신 비슷한 공사 종류의 시장단가를 이용해 공사비를 산출하는 것을 말한다. 80년대 말 ‘거품경기’로 인해 공사 예정가격이 부풀려지고 이에 따른 비리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표준품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시장단가제’로도 불리는 실적공사비 적산제도를 도입한 뒤 일본의 건설물가는 급속도로 안정됐다. 좋은 예가 철근 공사가격이다. 건설공사비가 시장단가로 매겨지기 전인 90년대 초 일본의 철근 공사가격은 t당 12만 엔 수준이었다. 그러나 토목공사에 시장단가를 도입한 뒤 그 비용은 6만~7만 엔대로 떨어졌고, 이후 4만 엔대까지 값이 내렸다. 품셈을 시장단가로 바꾼 뒤 가격이 3분의 1로 떨어진 것이다.

미국도 국가 표준품셈을 쓰지 않고 철저히 발주자가 시장단가에 의해 계약금액을 산정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낙찰업체가 비슷한 공사를 한 경험이 있을 경우에는 당시 계약금액을 적용해 공사비를 산출한다. 새로운 공법이나 기술이 도입됐을 경우에는 민간 원가 계산회사에 용역을 줘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하게 한다.

 

영국은 미국처럼 유사사업 계약단가를 활용함과 동시에 ‘실적공사비 정보’를 통해 계약금액을 매긴다. 실적공사비 정보는 건설잡지 등의 기술자료와 가격정보지, 정부 발행자료, 적산정보시스템 기관을 총 망라해 산출한 정보를 뜻한다. 이를 통해 책정된 예산은 발주기관 전문가와 인증된 적산사의 보정을 거쳐 최종 계약금액으로 확정된다. 

 

 

2014억 ‘흙 다짐 공사’ 하도급 업체가 실제 받은 돈은 980억

[탐사 기획] 어느 건설사 하청업자의 로비 고백
발주액-실제 공사액 차이 왜

지난해 7월 개통된 서울~춘천고속도로. 본지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토공사 부문에서 정부로부터 2014억원을 받아 하도급업체에는 980억원만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7월 민자로 건설해 개통된 서울~춘천고속도로. 주요 공정 중 하나인 ‘토공사(흙을 운반해 다지는 일)’ 부문에서 원도급업체인 대형건설사는 2014억원을 받았다. 그런데 건설 현장에서 실질적인 공사를 맡는 하도급업체가 실제 받은 것은 얼마나 될까.

본지 탐사기획팀이 확인한 결과 이 공사 하청업체들은 약 980억원을 받았다. 2014억원에 계약된 토공사에서 실제 쓰인 돈은 절반이 채 안 되는 980억원(약 49%)이었다는 얘기다. 서울춘천고속도로㈜ 측은 “직접 구매하는 자재비나 본사 직원 월급, 관리비용 등이 포함되지 않아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그런지 발주금액과 공사 금액의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토공사를 들여다 봤다. 돌을 깨 잘게 부수는 ‘발파암’ 작업의 경우 일반 발파의 단가가 시간당 8293원으로 계약돼 있지만 실제 하도급업체에 돌아간 돈은 3000~4200원이었다. 도로 밑면 흙쌓기도 시간당 1700~1900원에 계약해 하도급업체에는 680~800원을 줬다. 서울춘천고속도로㈜ 측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격차가 너무 크다.

하청 과정에서 액수가 크게 줄어드는 이유는 뭘까. 대형건설사는 정부로부터 높은 낙찰률(가령 발주자가 100억원을 제시한 설계금액이 80억원에 낙찰되면 낙찰률은 80%라고 얘기한다)로 공사를 수주받아 하청업체에는 최저가에 넘기는 관행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흔히 턴키 방식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턴키 방식은 높은 기술과 고난도 공법을 요구하는 공사 때 발주하는 방식이지만 우리나라는 일반공사에서도 이 방식을 많이 쓴다. 설계와 시공을 같은 업체에 맡기는 턴키 방식은 가격 경쟁이 아닌 설계 심의 점수에 따라 낙찰자가 정해지다 보니 대형건설사들은 가격 담합을 통해 80% 이상의 높은 낙찰률로 공사를 따낸다. 하지만 대형건설사는 자신들이 낙찰받은 가격의 50%대 수준의 낮은 가격으로 하청업체에 공사를 넘겨주는 것이다. 문제의 서울~춘천고속도로 역시 경쟁 없이 단독계약을 하는 민자사업방식으로 낙찰률이 사실상 턴키 방식과 비슷하다. 역시 턴키 방식으로 시공된 성남~장호원 고속도로 공사 제2공구의 경우도 대기업은 정부 예정가격의 80% 이상으로 공사를 따낸 뒤 수주한 금액의 59%만 하도급 업체에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조달청 공시자료에 따르면 2005~2009년까지 턴키 방식으로 발주된 100억원 이상의 공사는 250건에 계약금액은 총 16조5000억원이다. 이 공사들을 모두 최저가낙찰제로 계약했다면 평균낙찰률(59%)을 감안했을 때 계약금액이 10조9000억원으로 준다. 정부가 턴키 방식을 고집한 탓에 지난 5년간 약 5조6000억원의 예산이 대형건설업체 호주머니에 더 들어갔다는 일부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반론도 있다. 이종광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턴키 방식을 줄이고 최저가낙찰제를 확대하려면 공사품질이나 안전, 공사 원가의 합리성에 대한 사전 검토가 필요한데 우리나라 여건상 아직은 무리”라고 반박했다. 

 

 



“요즘 진짜 로비는 돈으로 안 해…자녀들 취직시켜 주는 게 최고”

하 사장 “내가 대기업 들어가게 해준 시장·구청장·국장 자녀만 7명”
[탐사 기획]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외치지만 … 30년 건설 하청업체 사장의 고백


30년 넘게 국내 건설현장을 지킨 굴지의 대기업 하청업체인 K사의 하윤성(가명·53) 사장. 그는 기자와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이 운영하는 건설업체 사장 명함과 대기업 A사 로고가 찍힌 ‘태스크포스(TF)팀 이사’ 명함을 함께 꺼냈다.

“우리 회사 명함은 내 사업을 할 때 , A사 이사 명함은 대기업을 대신해 로비할 때 건네는 것입니다.”

하윤성사장이 들고 다니는 두개의 명함.
하청업체 사장들이 들고 다니는 이른바 ‘로비용 명함’은 대기업에서 직접 찍어준 것이다.

“하청업체 사장들이 이사·영업부장 등 다양한 직책의 대기업 명함을 들고 다니면서 공사 수주와 인허가를 받기 위해 정부 부처·지자체 공무원, 정치인, 교수 등에게 전방위 로비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대기업이 공사를 따면 우리가 하청을 받는 거죠. 대기업은 앉아서 하청업체를 부려 먹는 대신 수주를 하면 우리에게 일거리를 줘 보상하는 방식이죠.”



하 사장은 자신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뇌물로 뿌리는 로비금액은 공사비의 1% 정도라고 했다.

“공사 수주를 위해 심의위원들에게 돈을 뿌리는 것으로 로비는 시작됩니다. 공사를 따도 단계마다 담당 공무원들에게 ‘급행료’ 성격의 돈을 줘야 일이 제대로 굴러가죠. 공사 심의에서부터 준공허가가 나올 때까지 50명이 넘는 공무원·교수 등에게 돈을 뿌리고 술과 밥을 산 적도 있습니다. 돈을 주는 기준도 직급별로 정해져 있어요. 지자체 공무원 중 팀장(계장)급은 50만~100만원, 과장급은 200만~300만원, 국장급은 400만~500만원 정도입니다.”

로비 과정에서 뇌물 수수 문제가 터지면 대기업 대신 하청업체 사장들이 감옥까지 간다는 게 하 사장의 주장이다. 그는 이런 방식이 이쪽 바닥에서는 특별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과거와 달리 국내 건설업계의 로비 관행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 사장은 “국내 건설 하도급업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잘못된 길을 걷게 됐고 지금은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국내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곧 이민을 떠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형건설업체와 거래하는 하청업체 사장들이 그들의 해결사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꼭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부터 뇌물 로비도 새롭게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요즘 공무원들은 현금·수표 뇌물은 받지 않지만 미화 100달러 지폐로 주면 받습니다. 그리고 진짜 로비는 돈으로 하지 않습니다. 뇌물 대신 자녀들 취직을 시켜주는 게 신종 수법입니다. 로비 받는 사람들도 워낙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다 보니 돈 몇천만원 받는 것보다는 자식을 대기업에 취직시키는 게 낫다고 보는 거죠. 제가 청탁을 받고 대기업체 신입사원으로 취직시킨 시장·구청장·국장·과장 자녀만 해도 일곱 명은 됩니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돈을 주는 것보다 직원으로 뽑아 끈을 만들어 두는 게 더 낫다고 여기는 풍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