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의 늪에 빠진 최근의 주택시장을 놓고 위기인지 정상화의 고통인지 의견은 분분하다. 그러나 건설경기 연착륙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주택시장 침체의 원인과 대책은 무엇일까.
◇정부가 할 일=주택시장이 침체한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정책이다. 정부는 지난해 주택가격 폭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5·23대책’ ‘9·5대책’ ‘10·29대책’ 등을 통해 분양권 전매금지, 재건축 조합원 분양권 전매금지, 주택거래신고제, 투기과열지역 확대 등 각종 규제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주택시장은 마치 ‘소나기식 폭격’을 맞은 듯 움츠러들었다.
고준석 신한은행 재테크팀장은 “주택공급이 부족한데도 미분양이 늘고 신규분양이 위축되는 현재의 상황은 정부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종철 주택협회 부회장은 “정부가 집값 잡기에만 몰두해 실수요자의 거래마저 위축시키는 정책을 한꺼번에 쏟아낸 것이 문제”라면서 “소비심리가 급격히 줄다 보니 공급도 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경기진작책을 펴면서 부동산시장이 과열되자 내놓은 대책은 항상 뒷수습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최근 주택시장 침체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다시 규제완화를 검토하는 것은 ‘땜질식’이란 비판이 높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박사는 “문제는 당장의 경기침체가 아니라 앞으로 2~3년 뒤를 대비하는 정책의 부재”라고 말했다.
정부 정책이 시장에서 ‘오락가락’ 행정으로 비치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책은 예측가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계급장 논쟁’으로 상징되는 분양원가 공개문제다. 열린우리당의 총선공약이던 분양원가 공개는 정부와 여당 내부에서 찬성과 반대를 반복하며 시장의 불안감만 키웠을 뿐이다.
예정된 정책도 입안에서 시행까지의 시차 때문에 시장이 더욱 위축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원가연동제가 시행되면 집값이 내릴 것으로 보는 실수요자가 집 장만을 미루고 있다”면서 “정책시행까지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원가연동제를 하루빨리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업체가 할 일=
주택업체들이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점도 있다. 지난 4년간 주택공급 물량은 2백20만가구로 어느 때보다 많았다. 주택업체가 실수요자가 아닌 투기세력에 의존, 일단 분양부터 하고 보자는 ‘밀어내기식’으로 분양에 나선 결과다. 실제로 최근 입주를 시작했지만 ‘역전세난’이 심해지면서 절반 이상이 빈집인 아파트 단지가 수두룩하다. 이러다 보니 업체들은 분양가의 20~30%를 차지하는 잔금 회수에 비상이 걸리는가 하면 유동성 위기를 맞은 곳도 생겼다. 업계는 회수되지 못한 잔금이 최소 2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한다.
여기에 ‘고분양가 책정→주변시세 상승→고분양가 책정’이란 악순환이 더해지면서 실수요자의 반발을 사고 있다. 서울지역 평당 분양가는 98년 분양가 자율화 이후 두배 이상 뛰어 평당 1천만원을 넘어섰다. 또 용인 동백·죽전지구처럼 업체들은 분양가 담합으로 부당이익을 챙기기도 했다.
특히 동탄신도시 시범단지에서 보듯 ‘로또택지’라 불릴 만큼 엄청난 수익덩어리인 공공택지에서조차 고분양가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한 업체는 이곳 땅(1만8천6백평)을 다른 대형건설회사에 8백억원의 프리미엄을 받고 팔아 넘기려다 언론보도로 들통나 무산된 적이 있다. 땅값에서 최소 8백억원의 이윤이 남는다는 얘기지만 평당 5백만원의 분양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경실련 김헌동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은 “최근 미분양사태와 역전세난은 주택업체들의 과도한 분양가 책정과 폭리가 주요 원인”이라면서 “정부가 업체의 과도한 폭리를 묵인하고 규제완화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 한다면 부동산 시장은 더욱 혼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니에셋 김광석 리서치팀장은 “주변시세보다 2배가 높은 분양가를 책정하는 등 최근에도 고분양가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적정분양가로 실수요자를 공략하는 자세가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주택시장 불패신화 깨지나] 下
대박도 쪽박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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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4-08-06 18:37] |
정모씨(45·서울 잠원동)는 지난해 8월 재건축을 추진중인 서울 반포주공3단지 아파트 16평형을 7억7천만원에 샀다. 당시 재건축 아파트값은 가파르게 뛰면서 매물도 귀했다.
정씨는 값이 더 오르면 매입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보유현금과 은행대출금 등 재산을 ‘올인’했다. 그러나 정부의 10·29대책이 나오자 정씨의 아파트는 두 달 만에 5억4천만원까지 폭락했다. 그 뒤 값이 조금 회복됐지만, 구입 가격에서는 1억원 정도 떨어진 상태다.
이달 입주가 시작되는 용인 구갈지구 ㅅ아파트 34평의 분양권을 가지고 있는 김모씨(46·경기 성남)도 사정이 비슷하다. 6천만원을 준 분양권의 프리미엄은 현재 1천5백만원 선으로 곤두박칠쳤다. 투자용으로 산 분양권이라 하루 빨리 전매를 해야 하지만 찾는 사람이 없다. 전세로 내놓으려고 해도 인근에 입주물량이 많아 5천만원대 전세값으로도 세입자를 구하기 힘들다.
요즘 들어 수년간 이어온 ‘부동산 불패’ 신화가 깨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한동안 전매차익이나 시세차익을 노린 ‘묻지마 투자’가 붐을 이뤘지만, 이제는 부동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대박 환상 버려야=최근 몇년간 수요자들은 부동산이 가장 안전한 투자대상이란 인식을 갖게 됐다. 집값이 계속 올랐기 때문이다. 시장이 침체한 지금에도 언젠가는 집값이 오를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는 위험한 인식일 수 있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박사는 “90년대초~95년 부동산 경기 하락세, 외환위기에 따른 부동산가격 폭락 등 과거 부동산 투자에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면서 “부동산 불패, 강남신화는 원래부터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동산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으로 부동산시장에서도 주식시장처럼 피해는 개미들이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지난 몇년간 부동산 호황기에 이익을 본 사람은 대부분 탈법과 편법을 동원한 ‘꾼’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반 투자자나 실수요자는 이들이 만든 거품을 믿고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상투만 잡은 꼴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행정수도 이전 등의 호재로 충청권 토지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지만, 벌써 큰손들이 한번 훑고 지나간 게 사실로 드러났다. 또 경기 광주·남양주 일대에서 ‘깡통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는 데서도 투기세력에 의한 거품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역의 한 중개업자는 “분양 당시 전매차익을 노리고 분양권을 수집한 ‘업자’들이 많았다”면서 “지금 급매물이 속출하고 하는 이유는 입주가 다가오자 이들이 한꺼번에 내놓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분위기보다는 손익계산을=부동산시장은 주식시장과는 달리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주변에서 ‘누가 아파트로 재미를 봤다’고 하면 자신도 그렇게 될 것으로 믿고 투자하는 사람이 많다. 한마디로 더 오를 것 같다는 ‘감’으로 투자 나서는 것이다.
현도컨설팅 임달호 대표는 “지난해 재건축아파트인 개포주공 10평형대가 최고 6억2천만원까지 거래돼 용적률과 주변시세를 고려하면 상당한 거품이 끼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매물이 없을 만큼 사려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분양을 받을 때 입지와 주변시세 등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기본이다. 지금도 주변시세의 2배까지 분양가를 책정하는 ‘배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몰린다고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조작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상당수 업체가 ‘분양권 전매가능’ 등을 전면에 내세워 실수요자보다는 투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한 대형건설업체 관계자는 “‘투기가 없으면 수요도 없다’란 인식을 가진 업체가 많다”면서 “지금도 분양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떴다방’을 돈으로 유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박재현기자 parkjh@kyunghyang.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