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개발공화국] 정부 개발사업 1553곳 "총액? 아무도 몰라"
[대한민국은 개발공화국] 2중 3중 승인, 누더기 돼버린 개발 지도
先인프라 後민간투자로 정부·지자체 헛개발 속출
기껏 세금 퍼부어 닦은 길… 일부는 아예 썰매장 돼
경북 영주시 시내를 벗어나 자동차로 10분가량 달리자 논·밭 가운데 불쑥 솟아 있는 육중한 회백색 콘크리트 건물이 나타났다. 짓다가 만 건물 아랫부분은 황토색 타일이 붙여져 있었고 담장 너머로 1m 두께의 주황색 플라스틱 파이프가 보였다.
'동양 최대규모'의 워터파크(4만2000㎡)로 야심 차게 추진했던 '판타시온' 리조트다. 단지 안으로 들어가니 야외 풀(pool)장은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인공 파도가 넘실거려야 할 실내 파도 풀은 물 한 방울 없는 맨바닥이었다. 10층 높이의 콘도 옥상 곳곳에는 철근들이 시뻘겋게, 흉하게 녹슬어 있었다.
이곳이 정부(국토부)와 시(영주)가 지정해 준 '개발촉진지구'라고 생각하니 쓴웃음이 지어졌다. '개발촉진'은 커녕 지역에 볼썽사나운 골칫덩이 흉물만 더 안긴 셈이 됐다. 2007년 A건설이 이곳에 1800억원을 들여 리조트를 개발하겠다고 나서자, 영주시는 국비 260억원을 지원받아 리조트 앞 영주~순흥 간 도로확장(6m→10m)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건설사가 부도나면서 리조트 사업은 전면 중단됐고 파헤쳐진 사업부지와 짓다가 만 건물은 2년4개월째 폐허처럼 방치돼 있다. 필요도 없는 도로 확장공사에 세금만 쏟아부은 셈인데 원인이 뭔지 챙기는 이도, 날린 돈을 책임지는 당국자도 없다.
- ▲ 동양 최대규모‘워터파크’를 목표로 추진했다가 공사가 중단된 경북 영주시‘판타시온’리조트. 건설사가 부도나면서 사업은 전면 중단됐고 파헤쳐진 사업부지와 짓다가 만 건물은 2년4개월째 폐허처럼 방치돼 있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무인헬기조종=에어픽스 신성민
◆마을 썰매장 된 온천단지용 도로
1990년대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구' '△△지역' 등 갖가지 명목의 개발사업지구, 지역을 잇따라 지정했다. 정부는 사업타당성 검증조차 제대로 않고 국비와 도비를 지원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토해양부 등 12개 중앙부처가 지정한 지역개발사업 지구·지역은 53종류에 이른다. 이러다 보니 '각종 지구·지역으로 지정된 개발사업 비용 규모가 얼마인지' 현재로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다고 정부도 시인한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솔직히 개발사업지구로 지정한 곳에 겹치기 지정해서 개발지도는 완전히 떡이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화천군 읍내에서 자동차로 10분쯤 달려 도착한 하남면 거례리. 마을로 들어서자 삼화리로 향하는 화천 3번군도(4.4㎞)가 산속 깊은 방향으로 뻗어 있었다. 하지만 그 도로에 차량은 한 대도 없었고 근처 마을 어린이 3명이 플라스틱 썰매를 타며 놀고 있었다. 주민 윤모(59)씨는 "겨울에 이 길에는 차가 안 다녀 아이들이 썰매장으로 쓴다"고 말했다.
화천군은 1997년 거례리 일대에서 온천이 발견되자 이곳을 '화천온천관광지'로 지정하고 국비 81억원을 받아 진입도로를 건설했다. 하지만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아 온천 개발사업은 14년째 중단상태다. 화천군은 눈이 쌓이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도로 제설작업도 않고 아예 봉쇄해 버린다. 원래 통행량이 적은 도로여서 주민들도 별 불만이 없다. 세금 81억원을 들여 산속에 '초대형 썰매장'을 만든 셈이다.
◆정체불명 지역 개발에 세금 낭비
한때 자치단체에서 유행했던 드라마 세트장은 물론 박물관·공연장도 지역관광단지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며 전국 곳곳에서 건설됐지만 이젠 세금만 축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충남 부여군은 2008년부터 충화면 가회리 일대(17만㎡)를 '서동요 역사관광지개발사업지구'로 지정, 2012년까지 370억원을 투자하는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 부여군은 2006년 이곳에 60억원의 예산을 투자해 드라마 '서동요'의 세트장(충화면 가화리)을 지었다. 드라마 상영 당시 입장객이 28만명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4만명으로 7분의 1로 줄었다. 한 해 입장료 수입은 3600만원밖에 되지 않아 시설 유지·운영비조차 건지기 힘들다.
인천시 옹진군 북도면 시도에 만든 '슬픈 연가' 세트장, 충남 태안군 남면 몽산리에 만든 '장길산' 세트장도 운영할수록 적자만 쌓이는 바람에 사실상 문을 닫은 상태다.
이렇게 된 데에는 1990년대 이후 진행된 지방개발사업이 '선(先) 정부의 인프라 투자, 후(後) 민간투자 유치' 방식으로 진행된 영향이 크다. 정부가 세금으로 지방에 도로·박물관 같은 시설을 먼저 지어놔야, 나중에 민간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논리가 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지방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곳곳에서 개발사업이 중단되고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면서 세금만 축내는 사업장이 속출하는 것이다.
장철순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역의 경제발전과 주민의 복지를 위해 써야 할 돈을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부실한 개발 사업에 쏟아부어 낭비하고 있다"며 "난립하는 지역개발 사업을 대대적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개발공화국] '개발 발표' 면적 합치니 국토의 1.2배
선심성 개발공약 남발… 전 국토가 누더기로
충북 제천시 봉양읍 일대 146㎢(4410만평). 정부는 낙후지역을 발전시킨다는 명목으로 2004년 이곳을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했다. 도로 등 기반시설은 정부가 설치하고 민간자본 3700억원을 유치해 스키장·호텔·골프장 등을 짓겠다고 계획했다.
2년 뒤 정부는 이곳을 다시 '중부내륙권 개발지구'로 지정했다. 제천시 전역(882㎢)을 관광휴양 거점도시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에 봉양읍도 포함시켰다. 이게 끝이 아니다. 2009년 말에 다시 봉양읍이 포함된 제천시 일대 326㎢를 '중원문화권 특정지역'으로 지정했다. 역사문화와 관광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봉양읍만의 사례가 아니다. 정부가 각종 개발사업을 하겠다며 전국적으로 지정해 놓은 지역·지구는 종류만 53가지에 이르고, 지정된 지역·지구 수는 1553곳(시·군·구 기준)에 달한다. 이 중 183곳은 2개 이상 중복지정돼 전체 지역·지구 면적(12만46㎢)은 남한 전체 국토 면적(10만210㎢)의 1.2배에 달한다.
정부는 정확한 전체 사업비조차 추산 못하고 있다. 본지 분석결과 전체 53개 종류의 사업 중 혁신도시·초광역벨트 등 규모가 큰 7개 종류의 사업을 완료하는 데만 1년 정부 예산(309조원)보다 많은 375조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국대 이현석 교수는 "정확한 수요 예측이나 타당성 검토 없이 선거 때마다 선심성으로 남발된 개발 공약에 전 국토가 누더기로 변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은 개발공화국] 땅값만 신났다
개발 발표 5년 만에 2배 이상은 기본
기획부동산에 홀렸다 원금 걱정 태반
"보부상(褓負商)촌을 만든다더니 6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입니다. 그동안 외지인들이 드나들면서 땅값만 천정부지로 올려 놨죠."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서 가축을 기르는 송모(54)씨는 2008년 축사를 더 짓기 위해 주변 땅을 알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3.3㎡(평)당 6만~7만원이던 땅값이 불과 2~3년에 10만~15만원까지 치솟았던 것. 그는 "땅값이 올랐다고는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축사 짓는 것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남발한 지역개발사업으로 땅값이 급등하면서 기획부동산이 횡행하는 등 피해를 보는 주민들이 속출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전국 1553개 지역·지구를 대상으로 지구지정 이후 땅값 상승률을 조사한 결과, 5년간 해당지역 땅값은 127% 급등했다. 인근 지역 땅값도 같은 기간 94.8% 뛰었다.
보부상촌 건설 등이 추진되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의 땅값은 지난 2004년 3.3㎡당 5만원 안팎이었지만 현재 도로변 토지는 100만원에 달하는 곳도 있다. 7년 만에 20배쯤 뛴 셈이다. 덕산면 주민 신모(49)씨는 "정부가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을 사업을 발표해 투기만 조장했다"고 말했다.
개발계획이 발표되면 어김없이 외지인이 몰려와 해당 지역을 거대한 투기장으로 만든다. 2004년 산업단지와 세종시 개발로 술렁이며 땅값이 급등했던 충남 당진군은 당시 1년 동안 거래된 토지(약 3만필지) 중 73%(2만2400필지)가 외지인 손에 들어갔다. 복운리 주민 박모(63)씨는 "외지인들이 동네 주민들을 구슬려 싼값에 땅을 샀다가 나중에 비싸게 되판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정부 개발계획을 믿고 땅을 샀다가 낭패를 본 사례도 적지 않다. 경북 경주에 사는 최모(37)씨는 6년 전 속칭 '기획부동산(토지 사기매매단)'의 설득에 넘어가 당시 기업도시 예정지인 원주시 호저면 일대 토지(330㎡)를 3000만원에 샀다. 하지만 기업도시 개발이 지연되고 인근에 계획됐던 도로마저 취소되면서 못쓰는 땅이 됐다. 최씨는 "원금이라도 회수하려고 하지만 살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원주공인중개사무소 유용금 대표는 "과거 기획부동산에 속아 원주 땅을 산 사람들로부터 하루 10통 이상 문의가 오지만 해당 업체가 없어진 만큼 보상을 받을 길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철저한 투기방지 대책 없이 개발계획을 남발해 땅값만 올려 사업 자체가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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