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전쟁

지하실에서 잠들어야 할 141만9784명

토건종식3 2011. 3. 25. 16:34

일부 언론이 '세금폭탄'이라고 이름붙인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조직적인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공시가 6억 원 이상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이들의 반발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이들 중 71%가 2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세금이 너무 많다"면서 정치권에 과세기준 완화를 요구했고, 헌법소원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나라 인구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머지 인구 중 절반 가량은 자기집을 갖지 못하고 전세월세, 사글세 등으로 '남의 집'에 산다. 게다가 한 집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전세값이 오르자 집 주인들이 '돈 없으면 방 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의 보좌관인 손낙구 씨는 이같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짚어보면서 정부와 언론이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의 '아우성'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남의 집 살이'를 하는 다수의 국민들에게는 무관심한 점을 문제삼는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손낙구 보좌관은 종부세에 대한 일부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전세값 급등과 국민 주거실태를 알리는 내용의 통계청 발표가 있었던 27일 밤을 새워 이 글을 작성했다고 한다. 그는 원시시대 베이징 원인이 동굴생활을 한 것에 빗대어 "21세기 베이징 원인(지하방 거주자)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온 나라가 집값 때문에 난리이지만 정작 집 없는 서민의, 집 없는 서민에 의한, 집없는 서민을 위한 목소리와 대안제시는 찾기 어려워 안타깝다. 오늘(28일) 조간신문만 봐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 통계가 발표됐지만, 왠지 한 쪽 목소리만 크게 들린다. 시가 10억 원이 넘는 주택을 갖고 있어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우렁차다.
  
  집을 여섯 채 넘게 가진 3만9000명, 다섯 채씩 가진 5000명, 네 채씩 가진 1만6000명, 세 채씩 가진 3만1000명, 두 채씩 가진 7만4000명, 한 채밖에 없는데 그 집이 시가로 10억이 넘는 6만8000명 등 23만7000세대(가구)에 관한 얘기다.
  
  환청일까? 신문을 보면 이들 열 중 아홉은 수도권에 살고, 열 중 넷은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에 산다는데, 이들의 목소리가 마치 전 국민의 목소리처럼 크게 들린다. 이들 중 최고 집부자인 상위 3%에 해당하는 7000명만 1000만 원이 넘는 종부세를 내게 되고, 300만 원에서 1000만 원까지 내는 사람이 20%쯤 되고, 나머지 77.2%인 18만3000명은 300만 원 이하의 종부세를 내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신문만 봐서는 마치 누군가가 이들의 10억 원짜리 집을 통째로 빼앗으려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다른 하나는 통계청 발표로, 이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5년까지 5년 동안 서울 아파트 전세값이 69%나 뛰었다고 한다. 이것도 2005년 11월 기준 통계이니 "방값을 올려 낼래, 아니면 나갈래?" 소리를 들어가며 집 없는 설움을 당한 최근 1년 간의 세월은 빠진 것인데, 어쨌든 전체 가구의 41.4%인 656만8615가구 1666만2298명에 해당되는 전월세 가구의 얘기이다.
  
  이 중 1003만6158명은 전세를, 543만4434명은 보증금 있는 월세를, 61만8572명은 보증금 없는 월세를, 57만3134명은 사글세를 살고 있다. 특히 반지하를 포함한 지하실에 사는 가구가 58만여 가구, 가구원 수로는 무려 141만9784명에 달한다.
  
  이들은 숫자도 많고 처지도 딱하지만 언론을 통해 들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작다. 부동산 투기의 최대 피해자는 이들과 같은 집 없는 서민들인데도 말이다. 정부가 뛰는 집값과 전세값을 잡지 못한 것 자체가 문제이지만, 우선 당장은 전세값 급등에 대해 임시방편으로라도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그것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외환위기 뒤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10개 중 8개를 장악한 외국자본은 전세자금 대출같은 서민대출에 대해서는 문턱을 높인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문에 못질을 해버렸다. 정부는 뒤늦게 전세자금 대출을 늘리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집주인한테 반환 확약서를 받아야 하는 설움도 설움이려니와 좀처럼 확약서를 써주지 않으려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서민들이 이런 일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주택금융공사의 전세자금 대출보증제도도 공사의 자금난으로 인해 제 구실을 하지 못해 넷 중 한 명꼴로 보증을 거절당하고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들이 빌리려 했던 전세자금은 1인당 평균 1340만 원이다. 1500만 원도 안 되는 전세금 대출 보증을 거절당하는 무주택자가 1년에 4만4000명이라니, 오늘 하루도 어디에선가 122명의 무주택 가장이 막막한 심정을 쓴 소주로 달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나 정치권, 언론은 집을 여러 채 소유했거나 고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귀를 기울이면서도 "누가 공짜로 달랬느냐, 집값을 못 잡았으면 전세금이라도 빌려줘야 할 것 아니냐"는 1700만 셋방살이 인생의 항변에는 메아리조차 없다.
  
  국회는 민주노동당이 발의한 전월세 가구 보호를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3년째 썩히고 있다. 전월세 계약기간을 외국처럼 3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10년 범위 안에서 세입자들이 갱신 청구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임대료는 한 해 5% 이상 올리지 말아야 한다거나, 전세를 월세로 바꿀 때 이율을 10% 아래로 해야 한다거나, 부도난 아파트나 주택을 경매할 때는 세입자에게 먼저 살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는 등 전월세 사는 세입자들에게는 한 조항 한 조항이 아쉬운 내용인데 정말 답답할 노릇이다. 세입자 보호 장치와 임대료 안정 위에서 선진국형 주거비 보조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비로소 가능한 일이어서 한시가 더 급한 데 말이다.
  
  정부가 전·월세값 폭등기에 집 없는 서민의 처지에서 정책을 편다면, 전세자금 대출이나 세입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가장 시급하는 여길 것이다. 그러나 40차례 가깝게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정부를 비롯한 정치권의 처방은 이를 모두 비켜가고 있다.
  
  그 내용이 집 없는 서민들의 집 걱정을 덜어주는 내용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인류의 경험을 종합하면 집 걱정을 해결하려면 내집을 장만할 수 있게 해주거나, 내집은 아니더라도 최소 30년 이상 '올릴래 나갈래' 소리 듣지 않고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거나 해야 한다. 그러나 역대정부는 둘 중 어느 것도 제대로 해결하지 않았다.
  
  1965년부터 40년 동안 새로 지어져 공급된 주택이 1300만 채가 넘지만, 공공임대주택은 그 중 2.7%인 36만 채에 불과하다. 자가점유율이 50% 밑으로 곤두박질친 1990년 이후 정부가 서민의 내집 마련을 지원한다면서 한 해 평균 50만 채가 넘게 새 집을 지어 대량 공급했지만 너무 비싼 분양가 탓에 그 중 절반 가까이는 이미 집이 있는 사람이 사들여 보유주택 수를 불리는 데 이용됐다.
  
  정부가 신도시를 세워 백수십만 채를 또 짓겠다지만 공영개발 방식으로 '아파트 반값 공급'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과거처럼 집 없는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짙다.
  
  집 없는 서민 중에서도 가장 처지가 딱한 사람들은 지하방 거주자들일 것이다. 몇 년 전 한국도시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3000만 원이 생기면 어디에 쓰겠느냐"는 물음에 지하실 거주자의 74%는 지상으로 이사 가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인간이 땅 속에 주거공간을 만들어 산 첫 흔적은 50만 년 전 원시시대 베이징 원인들의 동굴 주거지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21세기 세계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에서 3000만 원이 없어 하루 평균 40분밖에 햇볕이 들지 않는 지하실에서 자식을 키워야 하는 것은 집 없는 서민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의 극단적인 모습이다.
  
  정부 계획대로 2012년까지 국민임대주택 100만 호가 순조롭게 공급된다면, 우리 사회가 맨 먼저 보살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지하방 거주자들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임대주택은 지금 사업승인이 나도 입주까지는 5년 가까이 걸리는 데에다, 작년까지와 달리 올해 들어서는 9월 현재 사업승인이 완료된 게 다섯 채 중 한 채 꼴도 안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지하방 거주자의 95%가 사는 수도권에서 5년 안으로 예정된 공급물량은 지하방 거주자 수의 28.3%에 머물러 정작 필요한 곳에 주택이 지어지지 못하는 상태다.
  
  지금부터라도 집 없는 서민의 처지에서 주택정책을 펼쳐야 한다. 주택을 공급하더라도 이미 집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무주택자에게 공급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공급해야 하며, 응급조치는 응급조치대로, 중장기 대책은 중장기 대책대로 경중완급을 가려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착하게 산 사람일수록 살아 온 날을 더 후회하게 만드는 망국병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는 길도 여기에 있다.
  
  시가 10억 원 이상 주택 소유자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신문사 윤전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던 간밤, 부쩍 추워진 날씨에도 지하실에서 잠들어야 했을 141만9784명의 '21세기 베이징 원인'들이 꿈속에서나마 '지하에서 지상으로' 탈출하였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손낙구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보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