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8개를 살 수 있는 땅값
며칠 전 미국인 친구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재산세 얘기가 나왔다. 1백만달러짜리 단독주택에 사는 패트가 “해마다 1만달러 넘게 세금을 내는 게 너무 아까워 세율이 낮은 카운티로 이사 갈까 생각 중”이라고 말을 꺼냈다.
한동안 패트의 푸념을 듣던 샤론이 눈을 깜빡이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새로 이사 갈 카운티가 페어팩스만 할까? 과연 더 적은 세금을 내고도 여기만큼 안심할 수 있는 치안, 깔끔한 거리, 믿을 만한 교육을 기대할 수 있을까?” 생각에 골똘히 잠기던 패트는 “우리가 많이 누리는 만큼, 많이 내는 게 당연하지 않니?”라는 샤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부담적은 재산세 투기 조장 -
어느 나라 사람이든 세금 아까운 심정은 비슷할 것이다. 빠듯한 월급을 잘라가는 근로소득세도 그렇고, 집이나 땅에 물리는 재산세도 생돈을 뺏기는 느낌이다. 하지만 국방, 치안, 교육부터 상하수도 정비와 도로포장에 이르기까지 필수적인 공공 서비스가 세금 없이는 불가능함을 알기에 묵묵히 감수하는 것이다.
특히 선진국일수록 납세를 신성한 의무로 여기고 탈세에 더 엄격하다. 세금을 누가 더 많이 부담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원칙이 분명하다.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로 더 많은 혜택을 본 사람들, 소득과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다. 선진국일수록 다수에게 일률적으로 물리는 간접세보다 담세 능력에 따라 누진율을 적용하는 직접세 비중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손쉽게 걷을 수 있는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 비중이 높고, 재산세 등 직접세의 비중은 낮다. 특히 부동산에 물리는 재산세는 미국·영국 등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밖에 안돼, 돈 가진 이들이 ‘부담 없이’ 부동산 투기를 할 수 있었다.
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하려는 것은 바로 이런 문제를 바로잡자는 취지다. 집과 땅을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많은 세금을 물려 투기적 부동산 수요를 줄이고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런데 예상대로 이 법안에 대한 반대가 거세다. 지난해 10·29 부동산 대책이 나온 뒤 부동산 경기가 가라 앉아 있는데 꼭 지금 도입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법안 마련 과정에서 이미 적용 대상과 세금 인상폭을 최소화했는데도 재계와 일부 언론은 법이 시행되면 당장 건설 경기가 더 호된 된서리를 맞고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을 것처럼 호들갑이다.
이런 저항 때문에 여당 내에서 법안 추진 의지가 주춤해지고 내년 시행 예정인 1가구 3주택 양도세 중과 방안까지 유예될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만일 이렇게 해서 종합부동산세나 다주택 양도세 중과 정책이 좌초한다면 정부가 공언한 ‘부동산투기 근절’은 물 건너갈 것이다. 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갈 곳을 잃은 시중자금들이 규제가 느슨해지는 틈을 타 또 다시 부동산 투기 광풍을 일으킬 게 뻔하다.
- 국민 다수가 종부세 희망 -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은 최근 한 강연에서 “우리나라 땅값은 캐나다의 6배이며, 프랑스 전체 땅을 8번 살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런 터무니없는 땅값, 집값 때문에 봉급쟁이는 멀어지는 내 집 마련 꿈에 좌절하고, 기업은 비용 압박에 시달리며, 외국인들은 한국에 공장 짓기를 더 기피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제가 어려우니 투기대책을 연기하자고 할 게 아니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부동산 투기를 확실히 잡자고 해야 옳다.
아울러 종합부동산세를 투정하는 사람들은 ‘종부세 걱정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국민의 99%라는 사실 앞에 겸허해야 한다. 누리는 것에 걸맞게 세금 내고, 국가에 기여한다는 존경을 얻는 것이 ‘부동산 졸부’라는 질시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부동산 계급사회>
어떤이는 집이 1083채인데 841만가구는 무주택
해결책은 ‘무분별한 사유화 개념·제도 수정’
1963년에 견줘 2007년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43배 올랐다.
그런데 같은 기간 땅값은 서울은 1176배, 대도시는 923배나 올랐다.
도시노동자 가구 월평균 실질소득은 1965년 24만809원에서 2007년엔 350만7091원으로 15배 느는 데 그쳤다.
한국의 땅값 총액은 이미 1980년대 말에 1조4636억달러에 이르러 한국보다 100배나 넓은 캐나다 땅값 2562억달러의 5.7배, 한국 땅의 5배인 프랑스 땅값 1721억달러의 9배, 미국 땅값 2억9500억달러의 절반을 넘었다. 아마 지금은 미국땅도 몽땅 다 사고 남을지 모른다. 이렇게 부동산값이 오른다고 해서 그만큼 부자가 되고 잘살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사람들은 체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는커녕 국민 절대다수는 오히려 절대적·상대적 빈곤에 빠져들고 부의 집중과 양극화, 소비 감소로 결국 나라 전체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2005년 8월 현재 한 사람이 무려 1083채를 소유한 경우를 포함해 다주택 보유 상위 10명이 모두 5508채, 한 사람당 평균 550채의 집을 갖고 있었다. 이에 비해 전체 가구수의 50.3%인 841만 가구는 무주택 가구였다. 2002년부터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고 2007년 현재 100만채의 집이 남아도는데도 10명 중 4명이 집이 없거나 있더라도 돈이 없어 셋집을 떠돌고 있다. 1970년 72%였던 자가보유율은 2005년 55.6%로 떨어졌고 셋방살이 가구 비율은 같은 기간 26%에서 41%로 올라갔다.
왜 부동산값은 급등하고 집 없는 사람이 늘까? 민주노총 대변인, 심상정 전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베테랑 노동운동가 손낙구씨가 쓴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 펴냄)가 내린 결론은 결국 과도한 토지 상업화·시장화가 조장한 투기 때문이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6년간 집값 총액 상승분은 648조원으로 매년 평균 108조원씩 올랐다. 일하지 않고 얻은 불로소득이다. 이 가운데 87% 566조원이 아파트값 상승분이다. 그런데 이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 환수율은 7%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돈이 돈을 버는 투기구조의 최상층에 재벌이 앉아 있다. 그 다음에 부동산 관벌, 정치인, 그리고 보수언론, 일부 관변학자 등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이 바로 투기동맹을 맺고 있는 ‘부동산 5적’이다. 그 아래로 1가구 다주택 부동산 부자들, 1가구1주택자, 무주택자가 차례로 배열된다. 이것이 ‘부동산 계급사회’의 피라미드 구조다. 여기에 선분양제와 분양원가 비공개, 임대사업 세금특혜 등 가진 자들에게 각종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이 구조를 보호하고 있는 게 국가다. 그리하여 부동산은 한국에서 교육, 결혼, 취업 등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의 결정인자가 됐다. 부동산이야말로 한국사회 계급구조를 확대재생산하는 디엔에이(DNA)인 것이다.
민관의 다양한 문서와 통계 활용이 돋보이는 <부동산 계급사회>는 이른바 ‘재테크’라는 말로 포장된 투기가 한국사회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대안을 제시한다. 요체는 ‘내 땅, 내 집 내 맘대로 하는데 웬 참견이야!’라는 폭언이 상식으로 통하는 무분별한 사유화 개념과 제도를 수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 모순구조를 완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부추기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60억원 이상 소유 고위공직자 재산(부동산) 신고 대상자 가운데 1위가 다름아닌 이명박 대통령(381억9천만원)이라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출처 : 한겨레 / 한승동 선임기자 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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