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전쟁

어디 사세요? 왜묻나?

토건종식3 2012. 1. 4. 13:34



누구나 아파트와의 사연이 없지 않을 대한민국... 나 역시도 서울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수도권 최남단으로 밀려와서 엄청난 대출금까지 껴안은 다소 서글픈 아파트에 살고 있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 하나로 수많은 잣대를 들이 밀고, 질문을 받는 사람 역시도 상대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뭔가의 기싸움을 하게 된다. 어떤 승용차를 타느냐에 따라, 어떤 대학을 졸업 했고, 어떤 직업의 배우자와 결혼 했느냐에 따라 본질과 상관없이 어떤 사람의 수준을 평가해 버리는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집, 특히 아파트는 상당히 복잡하고 심오한 인간 계급사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정직한 대답의 결과는 질문자의 의식 수준에 따라 매우 불편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그러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매우 심도 깊게 진단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정리한 것으로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2010년 봄에 '어디 사세요? 주거의 사회학'이란 19회에 걸친 연재물을 사계절출판사에서 기획 초기단계부터 적극적으로 계약을 하여 단행본으로 출간한 의미 있는 성과물이다. 한 눈에 분위기 파악이 가능한 다양한 표와 그래프, 오래도록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대담, 성공 모델을 많이 보여준 독일이나 실패의 전형을 보여 준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심도 깊게 취재하여 우리 사회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부동산 광고 수입에 의존하느라 왜곡된 보도로 건설사의 홍보지가 되어버린 신문들과 거기에 놀아나는 서민들, 역대 정권의 부동산 정책과 깊이 고민하지 않고 욕망의 노예가 되어 정치인들에게 이용이나 당하는 서민들의 표심... 오로지 이익만을 좇는 재개발과 오르는 전세값을 따라잡지 못해 밀려나는 사람들의 비참한 주거문제까지 철저하게 다룬 이야기이면서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독자가 처한 입장에 따라 동의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다양한 문제를 객관성 있게 다룬 제법 괜찮은 책이라 생각된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1998~2005년 6월 전국 신문사 광고수익 자료에 따르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전체 광고 수익의 11~12%를 부동산 광고가 차지했다. 지방신문들은 부동산 광고 비중이 최고 47%를 넘는 등 의존도가 더욱 높았다. 또 조·중·동의 경우 광고 지면의 20% 이상을 부동산 광고로 채웠다. 신문사로선 광고주인 건설사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고, 이는 광고성 기사 게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41쪽)




중대형 미분양 아파트가 대구에 많은 이유는 뭘까. 건설사들이 중소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있는 중대형의 비율을 늘려 지었기 때문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2005년 12월말 대구의 전체 미분양 주택 3274가구 가운데 85㎡(25평)를 넘는 주택은 1407가구였으나, 2008년에는 1만 2715가구로 아홉 배 가까이 늘어났다. 사람이 '사는' 아파트가 아니라 건설사가 '파는' 아파트만 잔뜩 공급한 것이다. (99쪽)




"1960년대 이후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노인정, 어린이 놀이터 등을 갖춘 것은 아파트밖에 없고 종류와 내용의 풍요로움도 아파트로만 집중되어 갔다. 그래서 1970년대 이후 모든 사람들이 아파트로 몰려가고 아파트의 일반화 요인이 생겼다."

 -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지방에서도 특정구가 대구의 강남, 부산의 강남이라고 언급될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 동산 계급화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투자 상품으로 가치를 갖고 자본이 되는데, 부동산 자본의 지리적 집중이 나타나고 그에 따라 계급이 지역화 되고 있다. 특권을 가진 지역에 거주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노후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고령층은 격렬하게 부동산에 투자하고, 참여정부 때 세제 정책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국가가 국민에게 책임을 물을 때에는 국가가 뭘 해주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우리나라에서 재개발·재건축 하는 것을 보면 공공이 전혀 돈을 안 쓰고도 건물 다 짓는다. 재개발에 공공 재정을 하나도 안들이고 대단지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나라뿐인 듯하다. 거기에 주택가격, 평수, 분양방식이 따라가게 되고 이 조건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거다. 주택을 탈상품화 하기 위한 방식으로 많이 지어야 한다." -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 271쪽)




역대 정부의 주책 정책은 토건 세력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지난 10년간 진보성향의 정권에서 조차 그랬다. 김대중 정부는 당시 DJP연합에 따라 경제부처 요직을 친기업 성향의 보수인사로 채움으로써 친토건 정책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 중략 - 노무현 정부는 집권 기간 동안 총 45만 호의 주택을 추가로 공급했으나 집값은 내려가지 않았다. 개발광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등 지방 개발 정책이 줄을 이었고 동해안개발특별법 등 15개의 개발특별법이 무더기로 등장했다. 현집권 세력인 한나라당은 시장원리만을 앞세운 주택공급 확대논리를 강화해 "중대형 아파트에 대한 잠재 수요, 강남 지역에 대한 대체 수요 만족 방안을 마련해야 집값이 안정 된다"는 논리를 폈다. (111쪽)




가재울에서 10년 넘게 편의점을 운영했던 허모 씨(47세)는 한 달에 600만원 벌이를 했지만 현재는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50m쯤 떨어진 전세 5000만원짜리 다세대주택에서 살았지만 2003년 재개발과 함께 상권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장사는 하향세로 접어들었다. 더구나 집과 가게가 모두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었다. 보상금은 턱없이 낮았다. 권리금 5000만원, 보증금 7000만원, 월세 50만원인 가게에 대한 감정가액은 불과 1800만원. 주거 이전비도 4인 가족을 기준으로 1300만원이 다였다. 1년 6개월 넘게 투쟁한 끝에 상가에 대한 영업손실 보상액 3600만원을 받았지만 같이 장사를 하던 여동생과 절반씩 나눈 뒤 월세와 생활비로 날렸다. 그렇다면 다른 상가 세입자들은 어떤 상황일까. 재개발로 가재울을 떠나야 했던 상가 세입자 30명의 근황을 2010년 2월에 개별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결과 '수평이동'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부분 소득이 낮아졌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다. 그나마 허 씨의 경우가 상황이 좋은 편이었다. (40쪽)




건설사들은 택지비와 건축비, 간접비용을 부풀려 분양가를 높이고, 이윤을 축소 신고하는 행위를 버젓이 해왔다. 경실련이 2006년 화성 동탄 신도시의 건설비용과 이윤을 분석해 보니 건설 업체들은 택지비를 거짓 신고하고 건축비와 간접비를 부풀려 숨김으로써 얻은 이익 규모가 1조 2229억 원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분양가도 원가보다 20% 높게 책정했다. 건설업은 이처럼 공사비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다른 업종에 비해 비자금을 조성하기 쉽다. 관료와 정치인의 뇌물 통로로 활용하는 등 유착 고리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92쪽)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동네와 가장 낮은 동네는 어디일까. 분석 대상 518개 동네 가운데 2004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 평균 투표율을 기준으로 투표율이 가장 높은 곳은 송파구 잠실7동이며, 가장 낮은 곳은 강남구 논현1동이다. 두 동네의 평균 투표율은 각각 69%와 39%로 무려 30% 차이다. 잠실7동은 두 차례 선거에서 각각 74%와 65%가 투표한 반면, 논현1동은 46%와 33%에 그쳤다. 투표를 가장 많이 한 동네와 가장 적게 한 동네가 모두 강남권에서 나온 것인데, 두 동네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우선 주거생활의 격차가 눈에 띈다. 잠실7동에 사는 3163가구 가운데 90%인 2849가구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반면, 논현1동은 1만2514가구 가운데 75%인 9432가구가 무주택자다. 집을 두 채 이상 소유한 가구도 각각 17%와 3%로 잠실7동이 여섯 배에 달한다. 잠실7동은 동네사람 전부가 아파트에 사는 반면 논현1동은 76%가 단독주택에 살고 14%는 다세대주택이나 연립주택 등에 살며 아파트 거주 가구는 10%에 머문다. 잠실7동 가구 중 1인 가구는 7%에 그치고 지하 또는 반지하방에 옥탑방 등에 사는 가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논현1동 가구 중 48%가 1인 가구이며, 13%는 지하 또는 반지하방에 살고 있다. (227쪽)




불패신화는 깨졌다. 도쿄의 평균 지가는 1992년부터 13년간 연속 하락해 2004년 평균 공시지가는 1991년의 45% 수준에 불과 했다. 1991년1억1520만 엔에 달했던 도쿄 23구내 신규분양 75㎡(23평)짜리 맨션의 가격은 현재 반값도 안 되는 5400만 엔 수준이다. 수도권의 같은 크기의 맨션도 고점을 찍은 1990년 1억298만 엔에서 현재 반값 미만인 4965만 엔으로 떨어졌다. 서울의 강남에 해당하는 도쿄의 아카사카·아오야마·아자부 등 트리플A 지역의 분양가는 현재 평당 2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내진설계 등 특수공법으로 건축비가 한국보다 더 들지만 서울 강남보다 1000만 원 정도 낮은 가격이다. 버블 당시 도쿄 외곽에 지어졌던 신도시에는 빈 집들이 늘어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308쪽)


나는 수도권 최남단 동탄신도시에 거주하면서 수도권 최북단 파주출판도시로 매일 출퇴근을 한다. 어쩌다 가끔은 승용차를 타고 출근하지만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서통탄역을 출발하는 성북행 전철을 타고 가다 신도림역에 이르면 삶에 찌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전철대신에 경부고속도로를 관통하는 급행버스 M4403을 타고 강남교보타워 인근 신논현역에서 지하철9호선을 환승하게 되는 경우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전철이나 버스나 출발할 때의 분위기는 어차피 신도시 사람들이라서 거의 비슷한데 신도림과 신논현의 인파 속에서는 너무도 다른 문화를 만나는 것이다. 나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낯선 만남들을 통해 "어디 사세요?"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도시의 어떤 형태의 주택에서 자가 또는 임대로 사는지 여부가 삶의 질을 가르고 바꿔 놓는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이 책이 어떤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않겠으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줄 것이다. 잘 기획된 취재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보기 좋고 읽기 좋은 탐스러운 책이다. 이 안타깝고도 흥미로운 독서의 경험이 우리 사회를 보다 관심 있게 지켜보는 길잡이가 될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참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