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들

거품을 빼려면 공기업 '분양원가 공개' 부터

토건종식3 2022. 6. 10. 18:22

20년 시민운동가에서 SH공사 사장 변신 6개월
원가공개, 후분양제 등 오랜 정책제안 직접 추진
"분양원가 공개가 답…집값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주택공사는 서민 주거안정 위해 집값을 잡는 기관"
"타워팰리스 수준 공공임대 공급…인식 확 바뀔 것"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사장은 시민운동가 출신이다. 20여년을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살았다. 취임전 직함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 집값이 미쳐가던 시절이었다.

당시 시민운동가 김헌동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집값을 못잡는 게 아니라 안잡는 것"이라며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했다. "집권 초반 사는 집 말고 파시라"고 해놓곤 집부자들에게 세제·금융혜택을 듬뿍 얹어줘 투기에 꽃길을 깔아줬다는 것이다. 

그랬던 이가 작년 11월 SH공사 사장으로 변신했다. 마치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 같은 형국이다. 김 사장은 '미친집값'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취임한지 반년이 훌쩍 지난 8일 김 사장의 표정과 말투엔 자신감이 넘쳤다. "공개하면 싸질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집을 짓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원가를 공개하면 집값은 안정된다"는 거였다.

김 사장은 "서울 30평 아파트 원가가 4억이다. 이걸 알면 경기도의 30평 아파트를 9억에 분양 신청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 8일 집무실에서 UPI뉴스와 인터뷰하는 김헌동 SH공사 사장. 김 사장은 '미친집값'을 잡을 수 있을까.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싸진다"고, 그는 단언했다. [이상훈 기자]

김 사장 취임후 SH공사는 줄기차게 공공분양 원가를 공개하고 있다. 후분양제, 건물만 분양하는 '백년주택'도 추진하고 있다. 모두 시민운동가 시절 제안했던 정책들이다. 김 사장은 "달라진 건 없다. 내 생각과 철학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고 했다. "권한 가진 사람들이 그 권한을 약자들을 위해 사용하면 사회는 공정해진다. 얼마든지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했다.

김 사장은 지금 아파트값에 대해 "단군 이래 가장 비싸다. 거품이 심하게 낀 상태"라고 진단했다.

김 사장은 "분양원가 공개, 자산 공개 등 투명한 경영으로 공기업의 주인인 천만 시민이 모두 알게 하겠다. 그렇게 공사의 설립 취지대로 경영하면 자연스럽게 집값이 안정되고 서민 주거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했다.

주택공사 설립 취지란 서민의 주거안정을 말한다. "집값 잡으라고 만든 기관이 주택공사"라는 얘기다. 그런데 오랜 세월 현실은 거꾸로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는 '땅장사'(택지개발)로 천문학적 이익을 축적했고, 집값 폭등을 유발하는 역할을 했다.

이 대목에서 김 사장은 "기능을 전면 재검토할 때가 된 건 아닌지"라며 조심스럽게 LH공사 개혁 필요성을 언급했다.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설립된 LH공사는 지난 5년간 18조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공기업 중 최대 실적이다. 돈 많이 벌었으니 경영을 잘 한 것인가. 김 사장은 "공기업은 시민을 상대로 장사하라고 만든 기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기업도 장사다. 장사는 10배를 남길 수도 있다. 원가를 공개하라는 건 장사 논리에 맞지 않다"는 2004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소환하는 발언이다. 김 사장은 "그때부터 주택공사, 토지공사가 원가 공개를 거부했고, 그러면서 집값이 치솟았다"면서 "노 전 대통령과 반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당시 시민운동가 김헌동의 정책 제안을 전격 수용한 건 정작 국민의힘 계열 오세훈 서울시장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찐'친서민 정책을 진보정권은 외면하고 보수 정치인이 수용한 것이다.

그런 아이러니가 문재인 정권을 거쳐 작금 재연되고 있다. 김 사장을 임명한 건 3선의 오세훈 시장이다. 오 시장은 6·1 지방선거에서 4선에 성공했다.

김 사장 인터뷰는 8일 오전 서울 개포로 SH공사 집무실에서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대담 = 류순열 편집국장

 
– 노무현 정권이 수용하지 않은 분양원가 공개를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수용하지 않았나

"2006년 9월 25일 오세훈 당시 야당 서울시장이 공공분양원가 공개, 후분양제, 분양가상한제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2007년 4월 서울 송파구 장지동, 강서구 발산 지구에 분양원가를 상세하게 공개했다. "

– 성과가 즉각 나타났나

"2008년 이후 나타나기 시작했다. 분양원가가 공개되고 건물 분양 아파트가 이명박 정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강남 자곡동 LH강남힐스테이트 30평 아파트 분양가가 2억9000만원이었다. 강남인데 평당 970만 원인 것이다. 바로 옆에 강남구 자곡동 LH강남브리즈힐 건물 분양아파트(LH가 택지개발해서 직접 분양) 30평대 분양가가 2억2000만 원, 월세 토지세 20만 원짜리를 공급했다. 노무현 정부 때 용인에 평당 1800만 원, 인천송도에 평당 1700만 원, 파주교화에 평당 1600만 원에 분양되던 아파트값이 2010년에 강남에 평당 970만 원대가 나오니까 거품이 제거되기 시작했다."

김 사장은 "강남에 평당 970만 원짜리 아파트가 나오자 용인의 35평 6억 원짜리 아파트가 2억5000만 원으로 떨어져 버렸다. 노무현 정부말에 아파트 분양받아서 산사람들은 2010년, 2011년에 반토막 났다"고 말했다.

– 분양 원가 공개가 어떻게 집값을 잡는 건가 

"분양원가 공개를 통해 '30평짜리 아파트 건축비가 2억 원이더라', '30평 아파트 원가가 서울에 4억인데 그것을 SH공사가 5억에 분양해서 25% 이익을 남기고 있더라', '강남, 서초, 송파, 강동 강남권 4개 구가 대동소이하게 그렇더라'라는 것을 매달 공개했다. 언론이 계속 이것을 보도하면 경기도의 30평 9억짜리를 불안해서 분양 신청할 수 있겠나."

▲ 8일 UPI뉴스와 인터뷰하는 김헌동 SH공사 사장. [이상훈 기자]

– 분양 원가 공개,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나 

" 2007년 야당 오세훈 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이 반대해도,중앙정부가 반대해도 지방정부가 할 수 있다. 내가 SH공사에 와서 이것을 보여준 것이다. 국토부 장관, 대통령이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더라도 지방정부가 또는 지방공기업 사장이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공개 가능하다."

– 문재인 정부에선 아예 시도조차 없었던 것 같은데

" 문재인 정부에서 위례, 파주 운정 지구, 화성 동탄, 과천 지식정보타운 등 수도권과 SH를 통해 서울 고덕 강일지구, 마곡지구 등에 많은 물량을 공급했다. 그러나 싸게 할 것을 비싸게 했고 공개해야 할 분양원가를 지금도 공개 안 하고 있다. 새 정부가 집값 잡을 의지가 있다면 문재인 정부에서 공개하지 않던 걸 공개하고 얼마나 비싸게 바가지를 씌웠는지를 밝혀야 한다. 공개하면 싸진다."

– SH공사의 분양 원가 공개만으로 충분할까
 
" 효과를 더 내려면 LH가 지난 10년 동안 수도권에 공급한 분양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 LH는 수도권, 지방 대도시 아파트를 많이 공급해왔고 앞으로도 할 여력을 갖고 있다. LH가 분양원가를 공개해야 집값이 안정되고 거품도 빨리 빠질 것이다. "

– LH가 하려고 할까

"분양원가 공개는 사장이 의지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건데 자꾸 국토부에 물어본다고 한다. 변창흠 씨가 LH 사장 당시 국정 감사 때 분양원가 공개는 국토부의 허가와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본인이 국토부 장관이 되고 나서도 공개를 안 했다. 나는 국토부 승인이나 허가 안 받고 했다."

 LH 개혁이 필요한 건 아닌가

"기능을 전면 재검토할 시기가 오지 않았나 싶다. 집값 잡으라고 만든 기관이다. 집값 폭등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집값을 올리는 일도 했다."

– 토지 빼고 건물만 분양하는 반값아파트는 가격이 어느 정도인가
 
"건물만 분양하면 서울에는 건물 25평을 3억 원, 강남에 분양하면 5억을 받겠다고 밝혀왔다. 공공주택 유지 관리비, 조직운영비 등이 투입되기 때문에 그 정도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집은 재산증식수단이기도 하다. 건물은 감가상각이 되므로 결국 토지에 대한 권리가 중요한데, 토지 없이 건축물만 팔면 매력이 있을까

"그런 의문은 쉽게 해결된다. 강남 자곡동 LH강남힐스테이트는 토지와 건물을 같이 30평을 약 3억 원에 분양했는데, 문재인 정부 이전에 11~12억 거래됐고 지금은 19~20억 간다. 그 옆에 있는 LH강남브리즈힐은 토지는 LH가 가지고 있고 건물만 2억2000만 원에 분양했다. 문재인 정부 전 5~6억 가던 것이 지금 13~14억 원 간다. 10억 원이 오른 것이다. 땅까지 산 게 좀 더 자산이 더 증가하기는 했다."

– 오세훈 시장이 공공 임대아파트를 타워팰리스 수준으로 고급화하겠다고 밝혔는데
 
"공공이 짓는 아파트는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것을 바꿔주자는 취지다. 건축비가 평당 1억5000만원 가량 들어가는 것을 조금 더 투자해서 3억 들여서 더 좋게 지어서 분양해줘도 크게 부담감이 없다. 공공주택은 잘 지어놔야 유지비가 적게 들어간다. 결과적으로 유지비를 절감하면서 100년 이상 사용 가능한 아파트를 짓자는 것이다."

– 타워팰리스 수준의 공공 임대아파트가 등장하면 인식이 확 바뀔 것 같다  

"그렇지. 공공임대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첫 사례인 하계5단지 설계가 완료됐다. 내년쯤 착공하고 3~4년 후면 들어선다. 이후에도 단계별로 우리 SH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 재건축부터 그렇게 할 예정이다."

– 임기가 3년이다. 철학,포부를 요약한다면

"중앙정부 공기업 또는 다른 지방공기업 중에 내가 가장 투명하고 열린 경영을 할 것이다. 분양원가 공개, 자산공개, 준공 도면 등 공기업의 주인인 1000만 시민이 알게 할 것이다. 회사가 만들어진 목적대로 경영하면 자연스럽게 집값이 안정되고, 서민 주거 문제도 해결된다."

김 사장은 "권한을 약자들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경기를 부양하는데, 또 아파트 공급자들 편에서 쓰면 집값이 올라가게 돼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50만 개를 공급하며 30만 개는 대형건설업자들이 공급한다. 주택 시장도 대기업이 과점하고 있다"고, 김 사장은 강조했다.

끝으로 무주택 서민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꼭 지금 집을 살 필요가 없다면 기다리는 게..." 김 사장은 지금 집값이 "단군 이래 가장 비싼 상태"임을 상기시켰다.

UPI뉴스 / 강혜영 기자 khy@upi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