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건설사→시민운동→공기업 사장 ‘변신’
하지만 일관되게 ‘시민 주거 안정’ 마음
분양원가 공개, 공기업에서 처음 실시
‘건물만 분양해 반값아파트 실현’ 노력
국토부보다 높은 ‘서울형 건축비’ 도입
‘100년 사용’ 고품질 아파트 지을 계획
“경기주택도시공사(GH)·인천도시공사(iH) 등 전국 16개 광역도시공사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분양원가 공개 정책 등에 동참한다면 우리나라 주택 환경이 크게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헌동(67)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이 지난 4월20일 강남구 개포동 SH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강조한 말이다.
분양원가 공개는 지난해 11월15일 취임한 김 사장이 ‘반값아파트’ 정책과 함께 지난 6개월간 온 역량을 쏟고 있는 정책이다. 지금은 SH가 홀로 애쓰는 모양새지만, 김 사장은 “국민이 원하고 좋아하는 정책인 만큼 곧 다른 광역도시공사 등으로 확산됐으면 한다”고 했다.
김 사장은 지난해 SH 사장이 되면서 인생에서의 두 번째 ‘큰 변신’을 경험했다. 그는 지난해 8월 사임하기 전까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을 지냈다. 중간에 2016년부터 몇 년 동안 당시 정동영 의원 보좌관을 지낼 때를 제외하고, 1999년 경실련에 들어가 아파트값거품빼기본부장 등으로 오래 활동했다.
1981년 쌍용건설에 입사해 건설현장을 누볐던 김 사장이 시민단체를 택한 것이 그의 첫 번째 ‘큰 변신’이었다. 계기는 1995년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였다. 김 사장은 “다시는 이 땅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고, 이것이 시민단체 활동으로 이어졌다. 김 사장은 “건설 강국, 건축 대국을 만들기 위한 전략서를 가지고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며 “그러나 건축 강국이 아닌 (주택가격) 거품 강국이 돼서 거품 빼기 운동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20년 가까이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가 SH 사장이 된 ‘두 번째 변신’에 대해 “시민단체 활동을 할 때는 5천만 국민이 집걱정 안 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SH 사장이 되면서 1천만 서울시민이 집 걱정 안 하게 만들자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사장은 ‘1천만 서울시민의 주택 문제 해결’이 곧 ‘5천만 국민의 주택 문제 해결’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연결하는 핵심이 바로 ‘반값아파트’다.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오른 아파트를 어떻게 반값에 공급할 수 있을까? 김 사장이 제시하는 해법은 아파트를 지어서 ‘건물만 분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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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라는 것은 토지와 건물이 나뉩니다. 현재 아파트를 구매해도 토지는 아파트 소유자가 한 평도 쓸 수 없습니다. 이는 반대로 토지를 사지 않고 건물만 사도,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김 사장이 얘기한 반값아파트는 이미 법제화돼 있다. 2008년 국회에서 통과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촉진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그것이다. 2011년에 시행에 들어간 이 법의 핵심은 분양주택 건설 때 국가나 지자체가 토지를 임대함으로써 분양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김 사장이 주장하는 내용 그대로다. 그러나 ‘토지임대부 주택’은 이명박 정부에서 몇 차례 건설·분양됐을 뿐, 문재인 정부에서도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 김 사장은 이 부분을 들면서 자신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애정을 담은 비판”을 한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김 사장의 또 다른 역점 정책인 ‘분양원가 공개’도 사실 반값아파트를 확산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시민들은 땅값이 얼마인지 건물값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분양원가 공개는 SH가 분양한 아파트의 땅값과 건축비를 밝힘으로써, SH가 얼마의 이익을 남겼는지 공개하는 것입니다. 가령 SH가 서울의 한 지역에 25평 아파트를 지어서 분양했어요. 이때 땅값이 1억5천만원, 건축비가 1억5천만원 들어갔다고 합시다. 그러면 원가는 3억원인데, SH가 이것을 4억원에 분양했다면 33% 이익을 남기는 것이죠. 이런 분양원가 공개는 주민들이 아파트 가격을 땅값과 건물값으로 나누는 시각을 기르게 해줍니다.”
김 사장은 시민들이 이렇게 땅값과 건물값을 구분하게 된다면, ‘건물만 분양’에 대한 이해도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이에 따라 김 사장은 SH가 2007년 마지막으로 진행했던 분양원가 공개를 취임하면서 다시 시작했다. SH는 2021년 12월 고덕강일4단지를 시작으로, 지난 1월에 오금지구1·2단지 등, 2월에 세곡2지구1·3·4·6·8단지, 3월에 내곡지구 1·2·3·5·6·7단지까지 김 사장 취임 이후 4차례 분양원가를 공개했다.

SH는 이곳들은 지난 10년간 공급한 사업지 중 준공 정산이 완료된 곳이라고 밝힌다. SH는 앞으로도 준공과 정산을 마친 아파트 단지를 차례차례 공개해나갈 계획이다.
김 사장은 이렇게 꾸준히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우선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건물값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내다본다. 이렇게 되면 각 도시공사에 원가공개에 동참하도록 촉구하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반값아파트 확산을 위해 김 사장이 준비한 또 다른 카드는 반값아파트 고급화다. 일반적으로 반값아파트 하면 여러 면에서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김 사장은 오히려 품질을 높일 수 있는 여건이 된다고 강조한다.
김 사장은 고품질 반값아파트를 위해 “국토교통부가 만들어 운영 중인 ‘기본형 건축비’보다 높은 ‘서울형 건축비’ 도입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본형 건축비’보다 평당 건축비를 높게 책정한다는 것은, 설계부터 시공·감리까지 고품질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모두 땅값을 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김 사장은 “이렇게 건축비를 높이면 미국 뉴욕 맨해튼의 건물들처럼 1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고품질 아파트가 탄생할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반값아파트의 브랜드도 ‘백년주택’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반값아파트는 과연 언제 시민들에게 선보이게 될까? 김 사장은 “올해 상반기 중 공급되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구체적인 장소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SH가 보유한 여러 택지와 공공소유의 저이용 토지 등 많은 사업지를 대상으로 계속해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인터뷰 중 여러 차례 언론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 사장은 “언론이 주택 시장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며, 기존에 지어진 반값아파트를 로또라고 비판했던 언론 보도를 잘못된 보도 사례로 들었다.
“2014년 준공된 강남보금자리지구의 LH강남브리즈힐은 30평 기준으로, 토지를 제외한 건물만을 2억원대에 분양했습니다. 현재 시세는 13억원으로, 시세차익은 약 11억원입니다. 이것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로또라고 하는데, 바로 옆 LH강남힐스테이트는 30평을 건물과 토지를 더해 약 3억원에 분양했는데, 현재 시세는 17억원에 이릅니다. 시세차익이 14억원 가까이 됩니다. 건물만 사서 11억원이 올랐는데, 토지를 포함해서 사면 14억원 가까이 오른 셈입니다. 무엇이 더 로또입니까?”
잘못된 언론의 잣대가 반값아파트에 대해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김 사장의 경고다.
글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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