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3기 출범 이후 지방자치단체들의 공약사업은 ‘개발’과 ‘건설’로 압축된다. 경향신문의 정보공개청구에 답한 224개 기초 시·군·구 공약사업을 분석한 결과 구체적 개발·건설행위가 들어간 공약사업은 2,540건(집행액을 밝힌 공약 건수로 이하 같은 기준), 집행액은 50조6천5백85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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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집계액 69조5백94억원 중 73.4%가 부수고 지으며 콘크리트와 시멘트를 붓는 데 쓰였다.
지역경제·사회개발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문화체육 분야도 건설과 개발이 공약사업의 주를 이루었다. 공약사업 분석에 참여한 학계·시민사회단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과도한 개발과 건설 집중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주요 분야·부문별 분석=자치, 복지, 문화, 예술,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수많은 공약이 제시됐다.
어떤 사업에 얼마나 돈이 들었을까를 계산하는 것은 복잡할 것 같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대략 공약사업 둘 중 하나가 건설교통이었고, 넷 중 하나가 도로 건설이었다.
‘지역경제·사회개발’ 분야 중 건설·교통 부문 공약사업(1,080건)에 28조9천2백20억원이 들어갔다. 전체 집행액 69조5백94억원 중에 41.9%다. 도로를 새로 깔거나 넓히고, 아스팔트 포장을 새로 하는 데 들어간 돈이 18조7백36억원(26.2%)이다.
주차장을 짓거나 넓히는 데만 7천4억원(1.0%)이 들었다. 물류·유통·공업단지 조성 등 산업단지 부문(89건)에 3조3천8백65억원(4.9%)이 쓰였다.
지역경제 분야 분석을 맡은 서울여대 이종욱 교수(경제학과)는 “지역간 경제 격차를 줄이고 지속적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사업에 대한 투자는 별로 없고 건설·교통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 사업에 투자가 집중됐다”면서 “특히 도로 부문은 과잉 투자이며 예산 편성 과정에서 비용 편익 분석과 예산 사정을 고려하는 절차가 생략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오·폐수처리장, 하수종말처리장 등 환경기초시설 건설 사업(114건)에 들어간 돈이 2조3천14억원(3.3%)이었다.
환경정의 오성규 사무처장은 “환경 관련 공약을 보면 여전히 소각장, 매립장, 하수처리장, 상수도 시설, 하천 정비 등 대형 사업 건설이 주를 이룬다”며 “친환경을 내세우는 공약 중에는 결국 환경을 상징화한 개발 사업들이 많다”고 말했다.
관광 부문도 관광지, 관광단지, 관광벨트 구축 등 ‘관광개발’ 사업(517건)에 5조2천5백20억원(7.6%)이 들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오관영 기획실장은 “최근 문화나 관광 이미지를 차용한 사업이 많다”면서 “결국은 이마저도 대형 개발과 건설이며 최근에는 무분별할 정도의 대규모 관광 개발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문화체육 분야도 소프트웨어보다 하드웨어에 치중됐다. 운동장, 체육관, 문예회관, 청소년회관 등 각종 문화·예술·체육·청소년 시설 건설에 1조3천4백70억원이 들었다.
사회복지분야도 마찬가지다. 노인·여성·장애인 복지관 등 각종 시설건립(143건)에 8천6백억원이 들어갔다. 짓기만 하면 다 좋은 것일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박성희 간사는 “장애인들은 생계보장, 의료혜택 확대, 주택보장에 관한 복지 욕구가 많은데 각종 복지관 등 시설확충에만 집중되어 있다”며 “장애인들의 실제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어촌 관련 분야에서도 개발에 관한 지적이 나온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김황경산 정책부장은 “농민이 함께 추진하는 공약사업이 드물고 농촌지역 개발사업 등 소수를 위한 규모가 큰 사업만 들어 있다”고 말했다.
◇신개발주의와 토건 왕국?=단국대 조명래 교수는 “이번 분석에서 분명히 나타났듯이 단체장들이 내세우는 공약도 개발이고 치적을 쌓기 위해 역점을 두는 부분도 개발”이라며 “우리의 지방자치는 ‘개발자치’이며 오로지 성장논리와 시장논리만이 관철되는 신개발주의가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김제선 사무처장은 “지방은 개발 지향적인 관료, 의회, 지역토착 재력가, 지역 언론의 연줄망이 힘을 합쳐 오로지 건설과 개발에 올인하는 ‘토건 왕국’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라며 “우선 순위와 적정한 고려 없이 이루어지는 수많은 개발과 건설 사업의 혜택을 대다수 주민이 아니라 일부 세력만 누린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기획취재부 오광수·임영주·김종목·김동은기자 tamsa99@kyunghyang.com〉
-취재 어떻게 했나-
취재팀은 2월28일 전국 16개 광역단체와 234개 기초단체에 민선 3기 각 단체장들의 공약사업 내용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 개별 단위 사업명과 이행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 별첨 자료, 민선 3기 출범(2002년 7월) 이후부터 청구 당시 기준까지 투입된 예산집행액을 요구했다.
234개 기초단체 중 224개, 16개 광역단체 중 14개 단체가 정보공개 자료를 보내왔다. 취재팀은 엑셀(Excel) 프로그램을 활용해 각 공약 자료를 입력, 분석했다. 또 효과적 분석과 전달을 위해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했다.
감사원의 지자체 감사 결과 등 자료 조사와 함께 객관적인 접근을 위해 각 분야 시민·사회단체 전문가들에게 1차 엑셀 원자료를 제공하고 자문을 의뢰했다. 전문가 집단과의 간담회도 병행했다.
◇분류 기준=행정자치부의 ‘지방자치단체 세출예산 표준분류기준’과 기획예산처의 예산 분류를 참조해 기준을 정했다.
교육·지역사회개발·문화체육·환경 등 9개 큰 분야로 나눴다. 하위에 30여개 부문을 나눠 공약사업들을 분류했다.
애초 정보공개 청구 때 ‘국비’ ‘광역 시·도비’ ‘민자 사업비’ 등을 구분해 예산집행액을 요구했으나 절반이 넘는 단체들이 이를 구분하지 않고 자료를 보내왔다. 중앙정부 행정사무를 지자체 공약 사업인 양 보내온 것들도 있었다.
취재팀은 이런 사업들에 대한 분석 배제 여부를 고민했다. 대부분 기초단체들의 재정자립도가 30%대 안팎으로 국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했다.
또 ‘정부 예산 확보’ ‘국책사업 유치’ 등도 넓은 뜻의 공약사업으로 보았다.
언론사의 자의적인 공약 이행 점검이 아니라 국민 혈세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보이겠다는 취지에서 국비 및 교부금 지원에 따른 사업도 분석 대상에 포함했다.
그리고 ‘무분별한 개발’이 지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중앙정부로부터 비롯, 확산된다는 점도 고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