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감상>
이 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내용이 쉽고 복잡하게 꼬인 은유도 없다. 구호와 단호한 명령어를 시구로 채택하여
적절히 변주시킴으로써 형식상의 완결미와 함께 주제가 역동적으로 드러나 참여시의 전형, 진보적 민족주의자와 학생 운
동권에 널리 알려져 즐겨 불렸던 대표적 민중시다. 4월 혁명을 통해 보여주었던 민주화의 열망이 점점 퇴색해가던 당시
의 현실적인 여건 그리고 남북으로 갈려진 국토에 대한 안타까움이 진하게 스며든 가운데 반봉건, 반독재 반외세, 반폭력
외침의 목소리가 서슬 푸르다.
부끄럼도 아름다움인데 그 수줍음 어디론가 사라지고 ‘향그러운 흙가슴’조차 그 실체가 묘연해 시인은 붙잡혀갈 각오하
고 당시 현실의 모습을 질타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붙잡혀간 일은 없었지만 신동엽은 그 흔한 상 한번 타 보지 못하고 마
흔의 나이인 1969년 4월 간암으로 세상을 떴다. 대신 그는 오랫동안 민중시인, 현실참여 시인으로 섬김을 받아왔고 한참
지난 뒤 시비가 세워지고 최근엔 기념사업회도 발족되었는데, 만약 그가 오늘날 다시 살아있다면 이 현실을 두고 어떻게
노래할까?
정치판의 온갖 오물과 구린내에 가려 한때 희미하게나마 보였던 초례청은 지금 온데 간데 없고 두 가슴과 은밀한 ‘그곳
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의 모습은 다시 가물가물 멀어져만 가고 있다. 무영탑의 전설에서 볼 수 있었던 그들의 예술
혼과 지고지순한 사랑, 백제인이면서 신라의 국책사업에 헌신했던 그 화합의 정신에서 우리는 한민족의 원형을 발견하였
고 그들이 맞절하는 초례청 둥근 기둥에 기대어 동서화합과 남북통일의 붉고 푸른 꿈을 꾸었는데, 그렇게 우리는 민족의
화합과 자주 통일을 염원하였는데...
이제 다시 껍데기는 사라져야겠다. 해가 바뀌고도 슬며시 따라나선 껍데기는 모두 꺼져줘야겠다. 건물 벽에 미리 나붙은
허수아비 껍데기도 있더라. 정 꺼지지 못하겠다면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꾹 눌러 줘야겠다. 한마디로 껍데기는 거짓된
것, 참된 민족의 발전과 겨레와 국토의 통일을 가로막는 것, 아랑곳없이 자신의 영달만 챙기는 것, 시민의 삶을 박탈하는
것, 자유와 자주에 올가미를 씌우는 것, 부자의 덧욕심에 편승하고 그 욕망을 후원하는 것, 예술혼을 짓밟는 것, 그리고
존엄한 생명을 앗아가는 것, 그 모오든 차가운 쇠붙이는 이제 잘 가라.
-권순진(시인)
'경쟁입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동산 대재앙'의 주범들을 찾아서 (0) | 2015.02.04 |
---|---|
사대강의 턴키담합 솜방망이 (0) | 2012.06.05 |
가격경쟁 도입으로 세금도둑 막자해도 (0) | 2012.01.15 |
"노무현의 불행은 삼성에서 비롯됐다"(펌) (0) | 2011.10.17 |
최저가낙찰제를 흔들었던 토건족들 (0) | 2011.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