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잡으려면 부동산부터 잡아라"
'문제는 부동산이야, 이 바보들아' 공동저술한 김태동_헌동 형제
딱 18년 전이다. 분당 신도시 모델하우스가 일반에게 공개된 1989년 11월, 서울 외곽에는 기이한 광경이 벌어졌다. 당시 언론은 분당을 향한 행렬이 마치 전쟁 발발 직후 피난민 행렬과 같다고 보도했다. “칭얼대는 아이를 등에 업고, 초겨울 희미한 햇볕에 땀을 뻘뻘 흐리며, 사람들은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20여년이 흘렀어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최근 동탄 신도시 발표 논란에서도 보듯 부동산은 여전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각광받고, 그때나 지금이나 집 없는 40%의 국민들은 이미 치솟을 대로 오른 집값에 일할 맛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출범한 참여정부는 냉온탕을 오가는 정책발표와 개혁의지 후퇴로 오히려 부동산 거품을 키웠다는 평가다.
‘문제는 부동산이야, 이 바보들아’(궁리 펴냄)를 출간한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와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장 형제를 만나 ‘부동산공화국’을 진단했다. / 편집자
"개발 5적 손에 놀아나는 부동산정책 근본 대책을"
"계층간 빈부차이 심화, 결국 지속가능 사회 방해"
2000년대 중후반 부동산 가격 상승은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2001년 미국 닷컴 거품이 붕괴되면서 정책금리를 1%까지 인하해 경기를 부양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부동산 가치가 2배 가까이 뛰었고 영국, 스페인 등 유럽 국가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미국의 정책금리가 지속적으로 인상되면서 지난해 가을부터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
그러나 김태동 교수는 우리의 부동산 가격상승은 그 정도와 지속기간에 있어 정상적인 시장의 작동이라고 보기 힘들고 평한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훨등히 높은 것도 아닌데 2000년 이후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값은 3~4배 뛰었고 여전히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특수한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토지와 주택에서 발생 한 불로소득은 엄청난 규모다. 2000년에 2천500조원 정도였던 토지주택 가격이 현재로 7천조 원 정도로 약 4천500억원이 증가했다. 지난해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한 정부 예산이 175조인 것을 감안하면 천문학적인 수치다.
참여정부 들어서도 3천조 원 정도 급등하게 됐다. 김헌동 단장은 “토지 주택의 면적이 넓어진 것도 아닌데 가격만 폭등해서 토지 소유 상위 5%의 자산이 전체 자산 가운데 85%를 차지하게 됐다”며 상황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그는 또 “5%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부동산 거품은 20%가 부풀려졌다. 개발로 경제를 지탱해 가는 수준이다. 건전한 생산에 의한 성장이 아니라 자산 가치 상승으로 외형만 유지되는 구조다”고 덧붙인다.
김태동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성균관대학교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 김태동(성균관대 교수 사진
왼쪽), 헌동(아파트거품빼기 운동보부장 사진 오른쪽) 형제. 사진제공=도서출판 궁리
"서민 미래 저당잡는 것"
김 교수의 평가도 비슷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 형성은 펀더멘털(기초경제 여건)과 동떨어진 거품 현상이다.”
부동산 투기는 소유목적의 거래보다는 단기차익을 추구하는 소유권교환 시장을 활성화시킨다. 이런 시장이 활성화되면 유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어 주택공급량을 증가시키지만 국민경제와 유기적 연계 속에서 건전한 발전을 추구할 수 없다.
“부동산 가치가 이렇게 자꾸 뛰는 상황에서는 노동자들도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어 노사협력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자영업 등 서비스 분야에도 부담을 가중시킨다. 결국 시장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김태동 교수)
거품의 가장 큰 폐해는 계층 간 이동을 어렵게 해 사회를 경직시킨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10년 열심히 벌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이젠 20,30년 동안 절약하고 일해도 뛰는 아파트 값을 감당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가구 보유자들은 시세차익에다 임대소득까지 얻으며 불로소득을 얻는다. 결국 부동산 폭등은 일부 가진 자들이 서민들의 미래를 저당 잡는 것이다”고 말한다.
거품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우려에 이어 개발론자들의 공급부족론 허구성에 대해서도 메스가 가했다.
“개발론자들은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된다’며 부동산 가격거품도 결국 공급부족의 문제이기 때문에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부동산이 본래 목적인 주거공간이 아니라 투기수단으로 전락하면서 분양매물이 나오기만 하면 묻지마 투자를 하는 상황에서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은지 오래다.”(김헌동 단장)
지난 2003년 10&29대책 이후 판교신도시 계획, 2005년 8&31 대책 이후 송파신도시 계획처럼 정부는 각종 부동산 대책으로 시장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신도시 계획을 발표해 부동산을 널뛰게 했다.
참여정부 들어 10개 신도시 계획 발표가 있었고 계획대로라면 수도권 지역에 200만호가 공급된다. 여기다 행정도시, 기업도시, 지역혁신도시 등 개발 계획이 쏟아졌다. 김 단장에 말을 빌리면 단군 이래 최대의 건설 물량이다.
형제는 서민들의 삶을 거덜 낼 정도로 극심한 부동산 거품의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임대소득에 비과세는 첫 번째 거품의 원인이다. 임대소득에 과세하지 않으면서 다주택 보유에 강한 유인이 된다는 것이다.
임대소득 비과세 거품 원인
두 번째는 선분양 제도다. 선분양은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제도다. 계약금의 5%만으로도 청약을 할 수 있고 분양에 당첨만 되면 막대한 시대차익을 누리는 로또다. 또한 느슨한 부동산 담보 대출과 선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보유세는 투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들의 타격 포인트는 거품을 조장하는 제도를 유지하게 하는 세력과 구조다.
건설업자와 언론의 공생관계를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광고의 80%를 건설사에 의지하는 부동산 값이 10~20% 올라갈 때보다 1~2% 떨어질 때 더 크게 보도한다든지, 거품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장을 크게 싣는다. 그러면서 정부의 알량한 투기억제 정책도 못마땅해서 세금폭탄이니, 반시장 경제라느니 온갖 험담을 한다”(김태동 교수)
김 단장은 “학자와 관료 80% 이상이 특권계층과 연결돼 부동산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이렇게 숫자로는 3~5%밖에 지나지 않는 투기세력들은 자산의 8할을 차지할 뿐 아니라 권력에 막강한 영향을 행사함으로써 비정상적인 투기현상을 지속시키고 있다”고 평한다.
“형과 6개월 간 주기적으로 만나 대화하면서 부동산 문제는 사회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개발 5적들이 우리사회를 최악의 경기상황으로 몰고 가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덧붙였다.
후분양제&분양원가 공개를
김 교수는 청와대 재직 경험을 통해 공직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지적했다.
“정책을 세우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한 데 정부의 장관이나 국장들은 1년 안팎의 짧은 재임기간 동안 경제성장률을 높이는데 급급해 우선 단기적인 경기 부양에만 집착한다. 그러다보니 개발업자들의 손을 들어주기 마련”이라고 평가했다.
형제는 부동산 세력에게 휘둘리는 서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선 후분양제도, 원가공개, 임대소득 부과 등 제도개혁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공급부족론에 속지 말고, 실수요자에게만 아파트와 주택이 공급되독록 선분양제를 후분양제로 바꾸고, 설령 후분양제를 유지한다면 반드시 분양원가를 공개하도록 하여 투기가 주택시장에 끼어들지 않도록 해야한다. 밑빠진 독에 자꾸 물만 부으려 하지 말고 구멍부터 메우는 것, 주택공급 방식의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
도서출판 궁리 제공
이와 함께 김 교수는 정부가 재벌을 위해 환율 방어에 너무 많은 자금을 투입해 사회에 과잉 유동성을 제공한 것도 부동산 거품을 키우는 데 한 몫 했다며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미국처럼 금리인상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출을 위해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 환율 방어를 위해 통안채(통화안정증권)를 남발한 결과, 160조원 이상 현금과 같은 유동성을 시장에 부여했고 이 과잉유동성이 투기자금을 활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 개혁을 위해선 개발업자, 언론, 정치, 관료들의 부동산 담합을 깰 수 있는 인식확산과 실천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참여정부가 좌회전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한 것처럼 말이나 구호는 중요하지 않다. 정파나 이해관계를 떠나 서민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공급론에 속지 말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장기임대주책과 장기전세제도 등을 도입해 서민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고 있지만 그의 당적 때문인지 진보언론에서도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보수언론에도 관심 밖이다. 부동산 문제는 보수&진보 이념보다는 실천과 의지의 문제다.”(김헌동 단장)
미국의 1992년 대선에서 아버지 부시대통령은 1차 이라크 전쟁의 승전에 도취해 서민 경제를 등한시한 결과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들아”(It's the economy, stupid!)란 말을 들으며 클린턴에게 패배했다. 그들의 책 제목처럼 현재 양극화의 문제는 '부동산'이다.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과 중산층이 앞으로 선거에서 부동산의 비정상적인 현상에 대해 문제를 느끼기 시작한다면 지역과 이념이라는 오래된 이슈 대신 부동산이 그 자리를 잡을 것이다.
“대권에 나오는 누구라도 부동산 광풍을 잠재울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라” 형제의 충고다.
*김태동 교수는 - 1995년 경실련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다 1998년 국민의 정부 초대 대통령 경제수석으로 발탁된 뒤 정책기획수석, 대통령 정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이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냈다.
*김헌동 단장은 - 1982년부터 건설현장에서 일해 오다 1997년부터 경실련에서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2004년부터는 경실련 아파트거품빼기 운동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 시민사회신문/ 심재훈 기자 cyclo201@ingo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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