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사업

줄줄새는 피같은 국민 세금

토건종식3 2006. 2. 25. 23:37
"왜 국민 돈 5조로 건설업체만 배 불리나"

입찰개혁 가로막는 건설업체와 정부 관료

미디어다음 / 선대인 기자



입찰개혁








여기 두 가지 제도가 있다. 하나는 건설업체에게 20~30% 이상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대신 이렇게 하면 최소 국민의 혈세 5조원이 매년 더 들어간다. 반면 다른 하나는 건설업체에게 돌아가는 이윤 폭은 줄어들지만 국민의 혈세 5조원이 절약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건설업체의 원가 절감과 기술 개발을 유도해 건설산업의 경쟁력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이다.

전자는 적격심사제이고, 후자는 최저가낙찰제다. 어려운 용어가 나온다고 몸 사릴 필요 없다. 정부와 지자체, 공기업 등이 공공공사를 발주할 때 사용하는 입찰제도다. 적격심사제는 정부가 일정한 선에서 적정한 가격을 심사해 건설업체들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방식이다. 최저가낙찰제는 말 그대로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입찰자에게 공사를 주는 방식이다.

이 방안 중 두 가지를 고르라면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최저가낙찰제를 택할 것이다. 실제로 국내의 거의 모든 민간 건설업체들도 하청업체를 고를 때 최저가낙찰제를 사용한다. 선진국 대부분도 후자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국내 건설업체들이 해외에서 공사를 수주할 때도 이 방식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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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최저가낙찰제 시행 약속 제대로 지킨 적 거의 없어"


[표]정부의 최저가 낙찰제 시행 계획과 실제 시행 시기.


▲정부, 5조 아끼는 제도 도입 미적미적=하지만 전자의 방식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내 경제 및 건설 관료들과 대부분의 건설업체들이다. 건설업체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공공의 혈세’를 바탕으로 손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이 제도를 고집하려 할 수밖에 없다. 건설업체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달려 있으니 그렇다 치고 ‘국민의 봉사자’인 정부 관료들은 왜 그럴까.

정부 관료들도 겉으로는 최저가낙찰제가 거스를 수 없는 제도임을 안다. 이는 99년의 ‘공공사업효율화 종합대책’ 등 정부가 그동안 발표한 각종 정책에서도 인정한 바다. 하지만 정작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해놓고도 뭐가 아쉬운지 계속 미적거린다. 김대중 정부는 2001년 1000억원 이상 공공공사에 대한 최저가낙찰제를 시행하면서 2003년까지 이를 100억원 이상 공사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행 범위는 2003년까지 요지부동이었다. 노무현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해 정부는 500억원 이상 공사로 시행범위를 확대하면서 올해부터 대상을 1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난 달 29일 재정경제부는 또 다시 최저가낙찰제 확대시행을 유보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재경부는 건설 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건설업체들의 경영 악화를 막기 위해 이 제도를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경실련 김헌동 국책사업감시단장은 “재경부와 건교부가 이 제도의 시행 계획을 발표한 뒤 한 번도 제대로 약속을 지킨 적이 없다”며 “시행령에 시행연도까지 못박아놓고도 지키지 않을 바에야 뭐 하러 약속하느냐”고 따졌다. 그는 또 “경기 침체를 이유로 건설업체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국민들의 혈세 5조원이 낭비돼도 상관없다는 정부의 자세는 그들이 국민의 공복인지, 건설업체의 공복인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법으로 규정된 최저가낙찰제, 시행령으로 피해가=정부가 공공공사의 입찰을 붙일 때는 원칙적으로 최저가낙찰제를 시행토록 법에 규정돼 있다. 정부의 예산 지출과 관련한 계약행위를 총괄하는 국가계약법 10조 2항은 ‘국고의 부담이 되는 경쟁 입찰에서 충분한 계약이행능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서 최저가격으로 입찰한 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항의 마지막에는 ‘기타 계약의 성질 규모 등을 감안해 대통령령으로 특별히 기준을 정한 경우에는 그 기준에 가장 적합하게 입찰한 자’라고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최저가 낙찰제를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시행령으로 별도 규정을 둬 낙찰 방식을 정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예외가 원칙을 압도해 사실상 시행령이 법 취지를 완전히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계약법시행령 42조에는 ‘경쟁입찰에서 예정가격 이하로서 최저가격으로 입찰한 자의 순으로 당해계약이행능력을 심사하여 낙찰자를 결정한다’고 규정, 사실상 ‘적격심사제도’가 원칙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또 이 시행령에 따라 적격심사기준을 만들어 각 부처가 각종 입찰 계약 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결국 시행령이나 적격심사기준 등을 통해 법을 ‘빈 껍데기’로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신 정부가 국회 동의 없이 손쉽게 바꿀 수 있는 시행령 이하 각종 법령에 실질적인 내용을 규정, 관료들의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입찰제도를 바꿀 수 있도록 한 셈이다.

 


현행 적격심사제 복권추첨식으로 변질


 


한 사찰이 건설업체들에게 '입찰 당첨'을 기원하는 천도제를 지내주겠다며 보내는 광고 문건.

▲적격심사제는 제비 뽑기?=적격심사제는 공공사업 발주자인 정부가 부실공사 방지를 명목으로 일정 낙찰률 미만으로 낙찰되지 않도록 일정 수준의 낙찰 하한선을 만들어두는 제도.
명목은 그럴 듯하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낳고 있다.
우선 공사규모별로 수주 가능한 최저가격이 사실상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가장 큰 문제는 적격심사제도가 사실상 복권 추첨식의 요행에 의해 낙찰자가 결정된다는 것. 이 때문에 적격심사제도는 ‘운찰제’로도 불린다. 평가 항목 가운데 당해 공사 수행능력, 하도급 관리계획, 시공여유율 등 비가격 평가항목에서 거의 모든 건설업체들이 만점을 받기 때문에 사실상 입찰가격이 낙찰자를 결정하게 된다. 현행 적격심사제 아래에서는 정부가 정한 범위 안에서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내는 입찰자가 공사를 따내게 돼 있는 것이다. 정부는 입찰 당일 15개의 예비가격 가운데 4개를 추첨한 평균 가격을 예정가격으로 사용해 가장 근접한 가격을 써내는 업체에 공사를 준다. 결국 15개의 복수예비가격 가운데 4개를 맞히는 복권과 다름 없는 방식인 셈이다.
실제로 99년 8월 24일에 입찰이 이뤄진 J시 관내 국도대체 우회도로 건설공사 입,낙찰 사례를 보자. 이 공사에 입찰했던 업체 29곳 가운데 27개 업체가 사전심사(PQ)를 통과했고 통과업체의 절반이 만점을 받았다. 이들 업체들이 적격심사 점수인 85점을 받을 수 있는 72.99%에 가장 근접한 가격을 써낸 K업체가 낙찰받았다. 반면 72.89%나 73.15%를 써낸 업체들은 탈락했다. 업체의 시공능력이나 가격 경쟁력과 상관 없이 운에 의해 낙찰이 결정된 것이다.

이 때문에 입찰업체마다 명산대천을 돌아다니면서 기도를 올리거나, 용하다는 역술인을 찾아다니고 있다. 또 건설업체들마다 ‘자매결연’을 맺은 절과 교회, 성당이 숱하게 생겨났다. 어떤 절에서는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들에게 팩스를 보내 ‘천도제’를 지내면 공사수주가 잘 된다는 광고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입찰에 참가할 때마다 낙찰가격을 정확히 맞춘 경리직원이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생기고 있다.
이처럼 운에 의해 낙찰이 결정되기 때문에 입찰에 참가하기 위한 ‘페이퍼 컴퍼니’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건설업체들이 최대한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사실상 ‘입찰용 자회사’들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별도 직원이 따로 없는 이들 ‘페이퍼 컴퍼니’의 입찰을 대행하는 신종 업체가 생겨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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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임자 없는 돈'으로 여기는 건설업계와 정부 관료가 만든 합작품"



 


경실련 김헌동 국책사업감시단장.

▲최저가낙찰제 안해 10조원 낭비=이처럼 요행에 의한 복권당첨식 낙찰 제도로 변질된 적격심사제도의 폐해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운에 의해 낙찰업체가 정해지므로 건설업체들이 원가절감이나 기술혁신을 할 유인이 전혀 없다. 건설업체의 시공능력이나 예산 절감 가능성을 보고 발주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건설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미파슨스 김종훈 대표는 “요행에 의해 낙찰이 결정되는 현행 방식으로는 도저히 건설산업의 혁신을 유도할 수 없다”며 “복잡한 요인이 있지만 우리 건설산업의 국제 경쟁력은 갈수록 저하돼 미국이나 영국 등 건설 선진국의 60~70%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적격심사제도를 통해 건설업체에 일정 수준의 수익을 보장해주다 보니 공사 수주를 위해 대 정부 로비가 성행하고 있다. 관계 공무원들을 통해 입찰 정보를 알거나 입찰 자격을 확보해 입찰 기회를 늘리는 것이 도움이 되기 때문에 ‘검은 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경실련은 25일 최근 청와대 행정관이 경내 소규모 포장공사를 통해 1억원이 넘는 뇌물을 받은 사건과 관련한 성명에서 “소규모 공사에서도 1억원이 넘는 뇌물이 오가는데 100억원 이상 대형공사에서는 뇌물 수수는 더 말할 것도 없다”며 “부패방지를 위해서라도 최저가낙찰제의 확대시행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막대한 예산 낭비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최저가 대상 공사의 낙찰 현황을 살펴보면 조사 대상 107개 공사의 낙찰률은 각 정부 부처나 공기업이 예산안을 짤 때 기준으로 삼는 예정가격의 62.8%선에 머물렀다. 재경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에는 59.7%까지 떨어졌다. 반면 적격심사제도 아래에서는 이보다 20~25%가량 높은 80~85% 선에서 낙찰율이 형성된다. 올해 정부나 지자체, 공기업 등이 발주하는 공공건설사업 규모는 45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최저가낙찰제 도입을 통해 전체 공사액의 20% 가량을 절감한다고 할 때 한 해에만 무려 9조원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또 당초 올해 최저가 낙찰제 확대 실시 대상인 100억원 이상 공사 규모를 35조원으로 추정하면 7조원 가량을 절감할 수 있는 셈이다. 기존 최저가낙찰제의 시행으로 매년 2조 1000억원 정도가 절감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번 확대조치가 예정대로 시행됐다면 추가로 5조원 가량을 더 절감할 수 있었던 셈이다.

5조원이면 매년 1억원짜리 임대주택 5만 가구를 지을 수 있고 빈곤계층 50만 가구에 가구당 1000만원씩을 지원할 수 있는 돈. 국민 한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줘도 10여만원이 돌아가는 거액이다.

경실련 김헌동 국책사업감시단장은 “정부는 건설업체 보호를 명목으로 국민의 혈세 수 조원이 매년 새나가는 것을 방조하고 있다”며 “대다수 국민을 위한 실질적인 경제 회생 조치보다는 소수 건설업체들을 위해 국민의 돈을 퍼붓는 정책을 실행하면서 민생경제를 운운할 자격이 있느냐”고 비판했다. 김 단장은 “건설업체들은 해외공사 수주 때나 하청공사 계약 때는 모두 최저가낙찰제를 하면서 유독 정부가 건설업자에게 주는 것만 최저가낙찰제가 안 된다고 한다”며 “결국 국민 돈을 임자 없는 돈으로 여기는 건설업계와 정부 관료들의 도덕 불감증이 최저가낙찰제 시행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