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동 경실련 본부장 8·31대책에 직격탄
[이코노믹리뷰 2005-09-07 08:27]
“동네 사람들이 저를 싫어해서 걱정입니다.”지난 2002년부터 아파트 거품빼기 운동을 이끌며 분양 원가 공개, 후분양제도 도입 문제를 우리 사회의 공식 의제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김헌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아파트 값 거품빼기 운동 본부장. 정부가 지난달 말 발표한 8·31 부동산 시장 안정 대책에 대한 총평을 묻는 질문에 그는, 그간의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던 듯 다소 엉뚱한 말을 툭 털어놓았다.
국내 한 대형 건설업체의 기획담당자로 근무하다 세계에서 유일한 ‘선분양제도’를 비롯해 국내 건설업계의 후진적 관행의 문제를 깨닫고 이를 개선하고자 시민운동에 나서게 됐다는 그는 지난 1일 기자와 만나 “올해 말이면 집 값이 다시 10∼20%가량 상승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주택 공급을 늘려도 집 값을 잡지 못한다는 것은 판교 신도시를 비롯한 과거의 사례가 이미 입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또 “정부 관료들이 엉터리 통계로 국정 최고 책임자의 판단을 흐리고 있다”면서 “정책 집행의 바탕이 되는 과표 자료가 정확하지 않아 세금을 올려도 투기 수요를 잡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며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투기를 못 잡으면 물러나겠다고 했다. 정부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한 것 같다.
경제부총리는 이 달 초 한 방송사의 아침 방송에 출연해 이번 대책으로 집 값이 올해 초 수준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시한 바 있다. (지난달 31일 발표에서는 2003년 10·29 대책 이전으로 집 값이 하락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경제부총리의 발언이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올 들어 판교가 들썩거리면서 강남을 비롯해 분당, 용인지역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는데, 정부는 이 지역에 생긴 30조∼40조원 대의 거품만 빠지면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더 이상의 집 값 하락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정책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 값을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가 미온적이라는 얘기다.
- 참여정부 들어 수십 차례의 안정 대책을 발표했는데, 집 값을 잡지는 못했다. 이 정도만 하락해도 상당한 성과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안타까운 점은 이 정도의 정책 효과를 거두기도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 올해 말쯤 집 값이 다시 10∼20% 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니신도시 후보지인 송파구 일대를 보라.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지 않은가. 정부 발표에 앞서 2∼3달 전부터 투기세력이 이 지역에 땅을 구입했다. 판교에 33조원 규모의 거품이 생겼다면, 송파 신도시에는 50조원 이상의 거품이 낄 것으로 우려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 하지만 송파신도시가 주택공급을 확대해 장기적으로 집 값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서울 전역으로 집 값 상승세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미니 신도시 계획이 발표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예컨대, 뚝섬에 주상복합 아파트가 건립된다는 소문이 나자마자 주변 아파트 가격이 15% 올랐다. 여기에 강북은 광역 개발. 뉴타운 개발로 들썩거리고 있다. 또 모 건설 회사(포스코 건설)가 아파트 60평짜리(더샵)를 평당 2,500만원에 분양하려다 논란이 일자, 20만원을 깎아서 2480만원에 분양공고를 냈는 데 분양광고가 나오자마자 주변 아파트 가격이 10% 올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송파 미니 신도시 발표는 집값 상승세를 부추기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송파신도시가 벌써 들썩거리고 있지 않은가.
- 투기 이득 환수 방안이 강화됐는 데도 이 지역 부동산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택 공급확대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은 과거의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5년 간 아파트 250만채를 공급했다. 단군 이래 최대 물량이다. 하지만 집 값이 두 배 내지는 세배로 상승한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급을 늘려도 집 값은 떨어지지 않는다. 소수의 다주택자가 계속 이를 사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급을 늘려서 뭘 하겠나.
- 정부가 공급 확대와 더불어 제시한 투기이익 환수 조치가 먹히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종합부동산세로 눈을 돌려보자. 종부세 부과대상이 현행 9억원에서 6억원으로 확대되지만, 여전히 많은 주택이 종부세 부과대상에서 빠진다. 예컨대, 강남의 시가 8억원짜리 아파트와, 11억원짜리 아파트는 모두 부과 대상이 아니다. 각각 4억원과 5억5000만원 정도로 잡히기 때문이다. 과표 기준이 너무 낮다. 특히 강남은 다른 지역에 비해 과표가 유난히 낮다. 양도소득세의 경우 시행 시기(오는 2007년)도 문제다. 시장 참가자들에게 ‘대통령 선거하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또 바뀌겠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보유세도 오는 2009년에 1% 늘어난다. 하지만 그것도 시가 대비하면 0.5% 정도다. 과표가 낮아서 실제로 거둬들이는 게 없다. 다주택자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라. 주택가격이 연간 10% 이상 오르는 데다 임대 소득도 연간 5%가 생긴다. 15%의 소득이 생기는 데, 세금인상에 누가 겁을 먹겠나.
- 하지만 종부세는 과표를 단계적으로 올려 오는 2009년에 100%를 적용하지 않는가.
데이터의 신뢰성이 문제다. 건설교통부 사이트에 한번 가보라. 공시지가를 검색할 수 있다. 강남 땅값은 평당 1,500만원으로 돼 있다. 건교부는 이를 실거래가의 90% 수준이라고 하는 데, 이 지역 땅값이 그것 밖에 안되는가. 간단한 계산만 해봐도 얼마나 잘못됐는 지 알 수 있다. 이는 강남권 시가의 30~40% 정도에 불과하다. 관료들은 허위 정보를 가지고 대통령을 속이는 일은 이제 중단해야 한다. 정책을 만들기 전 제대로 된 시장 조사부터 해야 한다. 수백 명의 인력을 동원해서라도 우선 객관성을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모 공중파 프로그램의 아침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한 한덕수 경제부총리에게도 이러한 점을 지적한 바 있다.
- 부동산 정책의 바탕이 되는 기본적인 통계 자료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뜻인가.
지난 2003년 발표한 행정자치부 자료를 보자. 당시 대한민국 주택은 1370만채였다. 그런데 이번에 같은 부처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주택수가 당시에 비해 250만채가 줄어들었다. 현재 1000만명 가량이 거주하는 서울의 총 주택이 250만채 가량이다. 그게 갑자기 없어졌다고 한다. 수출을 한 것인가?(웃음). 같은 부처에서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자료라면 세대별 주택수 현황을 발표하면서 이전 자료를 우선 참고하는 것은 기본이 아닌가.
- 급격한 세율 인상은 소비 부진,유가 상승 등 대내외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지 않겠나. 정책 당국자들도 이런 점을 고민하지 않았겠나
지난 1992년 공사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일본에 간 적이 있다. 당시의 일본 상황이 지금 우리나라와 꼭 닮았다. 일본은 거품이 터지며 10년 간의 장기불황을 겪었다. 유가상승, 세계 집값 불안의 악재들이 산재한 점은 잘 알고 있다. 정책 당국의 고민도 이해한다. 하지만 버블이 갑자기 터질 경우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지금부터 조정해 나가야 한다. 결국 거품이 붕괴될 경우 최대 피해자는 결국 서민들이지 않겠는가.
- 8.31 대책에는 서민주거 안정책도 대거 포함돼 있다. 서민들의 눈물을 씻어줄 수 있겠나.
과거의 정책을 다시 한 번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데 그쳤다. 돈 없는 무주택 서민들에게 전세대출금을 1% 정도 싸게 해주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 그나마 이를 제대로 빌려 쓸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 또 주택구입자금으로 2조원을 제공하겠다고 하는데, 강남의 아파트 단지 하나가 보통 4조~5조원이다. 10억짜리 아파트 3000개가 있으면 3조원이다. 은마 아파트 단지 하나가 3조~4조원이다. 양질의 임대아파트 건설을 늘려야 하는 데, 이 부분은 내년과 내후년에 계획보다 1만채씩을 늘리겠다는 내용뿐이다. 이나마 지켜질 지도 의문이다. 정부가 서민들을 위한다면 2.5%에 불과한 임대주택 비율을 선진국 수준인 25%대로 늘려나가야 한다.
- 이번 부동산 안정 정책이 결국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인가.
서민들보다 건설업자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부동산 시장의 난맥상을 잡으려면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후분양제를 실시해야 한다. 관료들의 반발로 두 가지 모두 사실상 좌초됐지만, 국내 부동산 시장의 건전화를 위해 반드시 도입해야 할 조치들이다. 관료들이 업자들과 유착해 시장 선진화 조치를 외면하고 있다. 작년에 분양원가 공개를 반대하던 관료들을 보자. 당시 김진 주공사장,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 가운데 현직에 있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다. 김진 주택공사 사장이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김 전 사장은 8·15사면으로 풀려났다). 이헌재 전 장관과 강동석 전 장관도 본인이나 친인척의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낙마했다.